[기고]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아시나요

  • 정미경 (구미경찰서 수사심사관실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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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8  |  수정 2023-08-08 08:20  |  발행일 2023-08-08 제21면

[기고]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아시나요
정미경(구미경찰서 수사심사관실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위)


범죄 피해를 본 보통 사람은 대개 '나의 피해는 얼마나 될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범죄 피해로 상해를 입으면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담당 수사관에게 제출하면 되지만, 자신이 겪은 범죄 피해를 문서로 표현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경찰청이 지난 3월부터 전국 모든 경찰서에서 시행하는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소개한다. 이 제도는 외부 심리전문가가 범죄 피해자의 신체·심리·경제·사회적 피해를 종합 평가한 보고서를 작성해 수사서류에 첨부하는 것이다. 세밀한 피해 사실이 들어있는 보고서는 판사가 구속영장을 심사하거나 재판부가 양형을 정할 때 증거자료로 활용된다.

범죄피해 평가제도 적용 대상은 △살인·강도 등 강력사건 △스토킹·데이트폭력을 포함한 관계성 범죄 △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상대 사건 등으로, 심리전문가가 범죄피해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준다. 백 마디의 말보다 실효성 높은 피해 평가 보고서는 범죄 피해자의 객관적 입증에도 훨씬 유리하다.

범죄 피해자인 고3 수험생 A군은 진단서로는 증명하기 어려운 자신의 심리적 피해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활용해 학업 손실과 정신적 피해를 입증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반 범죄피해와는 달리 고3 수험생의 학업 손실과 정신적 피해를 말이 아닌 문서로 증명한 것이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 피해자 B씨는 모국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범죄피해 평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국어로 표현하기 힘든 심리적 피해를 꼼꼼하게 다룬 보고서는 수사 서류에 첨부됐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엄벌을 희망하거나 자신이 입은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주장해야 할 경우에도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강력히 추천한다. 피해 평가는 수사상 필요한 조사와는 달리 외부 심리전문가의 상담 검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에도 도움이 된다. 가해자 처벌에 객관적 힘을 보태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시너지 효과도 얻게 된다.

피해자 평가는 두 차례 나눠 실시된다. 1차 평가는 90분가량 진행되는 외부 심리전문가와의 면담 검사다. 1차 평가를 마친 뒤 일주일가량 지나 진행하는 2차 평가에서는 30분 정도 면담을 실시하고 실물 평가보고서를 피해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피해평가 요청에서부터 결과를 얻는 데까지 통상 2주 정도 걸리지만 최근에는 기간을 3~5일로 단축하는 신속 평가 절차도 있다.

경찰청의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이용한 피해자 1천2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만족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범죄 피해를 본 피해자가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이나 생각을 형사 사건 처리에 객관적으로 반영되도록 활용할 것을 권유한다.

정미경(구미경찰서 수사심사관실 피해자전담경찰관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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