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사회적 고립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를 직시해야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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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7  |  수정 2023-08-07 07:07  |  발행일 2023-08-07 제22면
전에 없던 흉악범죄 빈발

사회부적응한 자가 저지른

병리현상으로만 볼 수 없어

부적응자 양산 배척하는

사회구조적 문제 직시해야

[아침을 열며] 사회적 고립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를 직시해야
박순진 대구대 총장

이번 여름 들어 전에 없던 흉흉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세상의 인심도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선량한 일반인이 길을 가다 섬뜩한 기운을 느껴 슬쩍 뒤돌아봐야 하고 사람이 여럿 모여있는 장소에서는 종종걸음 하게 된다. 무더위만으로도 힘든 요즈음 우리네 일상의 모습이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고 자랑하던 우리 사회가 벌건 대낮에 테러를 걱정할 정도로 불안한 사회로 변해가는 현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뜻 이해하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흉악한 사건을 마주하면서 범죄자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다. 흉악범을 엄중하게 처벌하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반사회적 행위를 한 범죄자를 극형에 처하거나 사회에서 영구 격리하여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가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비해 법률은 엄중하지 않고 형벌 집행은 관대하며 전과자에 대한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비등하는 여론에 밀려 형사사법기관이 일벌백계의 엄중한 처벌을 공언하곤 한다. 정치인도 가세하여 강력한 처벌만이 정의를 구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한순간에 만들어진다. 일벌백계의 강력한 처벌이야말로 대중의 감정과 정서에 부합하고 분명히 정의를 구현하는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누군가를 선택하여 본보기로 엄하게 처벌하는 일벌백계가 과연 공정하고 제대로 된 대책인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형벌은 죄에 상응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보면 저지른 행위에 비해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일은 정의롭지 않다. 일벌백계는 누군가 본보기로 타인의 몫까지 뒤집어쓰고 처벌받는 것이다. 누군가는 처벌을 면한다. 특출한 범죄자를 본보기로 엄벌하는 처벌은 달리 말하면 선택적 면제와 같다. 처벌은 요행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힘세고 높은 자들에게 유리하거나 예외로 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야말로 정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하는 사형이 아닌 이상 범죄자는 형을 마치면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우리와 같은 문명국가의 형벌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사법 현실은 비등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고 설령 사형이 선고되더라도 실제 집행되지는 않는다. 범죄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사회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아무도 전과자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전과자를 배척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공동체적 가치가 희박해지면서 편을 가르고 남을 배척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손쉽게 남을 비난하고 타인의 실패를 냉혹한 시선으로 대하는 관용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다시 일어날 기회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실패하거나 사회에서 떠밀려 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고립된 사람들이 선택하는 되치기가 돌이킬 수 없는 극단적 범죄로 귀결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흉악한 범죄를 사회에 부적응한 한 개인이 저지른 병리 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범죄는 허공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나라가 한반도에 인간이 거주한 이후 가장 잘 사는 시대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좌절하고 희망을 버리는 청년이 드물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회가 문제이다. 부적응자를 양산하고 배척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진지하게 직시할 때다.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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