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바스코 포파 '당나귀'

  • 송재학 시인
  • |
  • 입력 2023-08-07  |  수정 2023-08-07 07:21  |  발행일 2023-08-07 제21면

때로

당나귀는 물기도 하고

때로 뒹굴면서

흙먼지 투성이로 목욕도 하지요.

그래서 당나귀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그저 당나귀의 귀만 볼 뿐이지요.

어느 혹성의 머리통에 달린,

당나귀 표시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바스코 포파 '당나귀'


[송재학의 시와 함께] 바스코 포파  당나귀
시인

당나귀는 사람을 깨물기도 한다. 당나귀는 아무 데서나 함부로 잘 뒹굴기도 한다. 게으른 당나귀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땅바닥을 구른다는 '나려타곤'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게 당나귀의 본성이다. 하지만 물지 않거나 뒹굴지 않으려는 뻣뻣한 당나귀도 있다. 그런 당나귀를 당나귀인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지도 않고 뒹굴지도 않는 당나귀의 귀는 어느 혹성의 머리통에 달린 귀처럼 알지 못할 수수께끼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매일 지나치는 것일까. 유고슬라비아의 시인 바스코 포파(1922∼1991)가 바라본 당나귀에 대한 생각이다. 지금은 당나귀처럼 보일지 모르나 당신이 바라보는 저 짐승은 당나귀이긴 하지만 당나귀가 아닌 본성을 가진다는 상상력. 편견과 상식에 대한 일침이다. 바스코 포파는 전래되어 온 수수께끼, 주문, 잠언, 자장가 등에서 시적인 요소를 찾아서, 초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시인이다. 시인들이 좋아하면서 시인들에게 유독 높은 평가를 받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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