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남긴 유산

  •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
  • 입력 2023-08-09  |  수정 2023-08-09 07:05  |  발행일 2023-08-09 제26면
소프트파워 국가경영으로

역사에서 승자가 된 아테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도

물리력 하드파워가 아니라

소프트파워 육성이 시급

[시선과 창]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남긴 유산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200여 개가 넘었다고 하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대표하는 두 나라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이다. 이 둘은 인구 구성이나 정치제도 그리고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대비가 된다. 아테네가 평등한 시민으로 구성된 민주정치를 펴면서 다양한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꽃피운 반면 스파르타는 지배층과 노예계급을 엄격히 분리하고 군주정치와 군사력 강화에 최우선을 두고 나라를 경영하였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문명이란 바로 아테네문명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그리스 반도의 최강국은 스파르타였다. 반도의 맹주 자리를 두고 벌인 30년 전쟁의 최후 승자는 무력을 앞세운 스파르타였고 아테네도 결국은 스파르타의 지배와 통치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역사에서의 승자는 아테네였다. 고대 스파르타의 유적지는 폐허 속에 방치되어 있고 인류역사에 영향을 끼친 사상이나 제도는 없다. 엄격한 규율과 반복 학습으로 상징되는 '스파르타식 교육'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용사들을 그려낸 영화 '300'을 남겼을 따름이다. 반면 패배자였던 아테네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철학은 서구문명의 밑거름이 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 우리의 삶까지 규율하고 있다.

왜 그리 되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은 국가경영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축 중 어디에 더 역점을 두었는가의 차이이다. 조직과 국가의 성공을 위해서는 외형을 갖추는 것과 그 속에 담을 실질을 함께 추구해야 하겠지만 갖춤의 선후나 비중에서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엄격한 격식과 외형을 갖추어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나 속은 오히려 허실한 경우와 질서도 없고 유약해 보이지만 내면은 내공으로 단단히 뭉쳐진 것과의 차이이다.

일사불란함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체제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나 북한의 천리마 운동에서 보듯이 이러한 대응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하여 짧은 성과를 낼 수는 있지만 곧 그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반면 소프트파워는 눈에 보이지 않고 내용을 채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완성되면 문화로 자리 잡고 개인이나 조직의 DNA에 각인되어 세대를 거쳐 이어진다. 우리는 광복 이후 산업화라는 물적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와 절차적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선도하는 소프트파워를 신장시켜 나가는 시점에 있다. 우리의 정신문화유산과 역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 예이다. 물질과 외형을 우선시하던 권위주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소프트파워의 구축에는 유연함과 다양성의 존중이 핵심이다. 이것들이 없이는 새로운 사상이나 창의성이 탄생하기 어렵다. 아테네에서 소프트파워가 발휘된 데에는 평등이 바탕이 된 민주정치의 실현, 나와 다른 생각을 수용하는 열린 자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태도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민간에서는 창의와 문화적 다양성이 커지고 있는 반면 국가경영에서는 오히려 일사불란함과 강함이 선호되고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나 신뢰와 같은 미덕 대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물리력과 강제가 핵심인 하드파워가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소프트파워는 말 그대로 부드러움을 먹고 자란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