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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구 의료계에 10대 여학생이 자해로 인한 낙상 후 응급실을 찾아다니다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제주대병원 영아사망, 아산병원 뇌출혈 간호사 사망 등 사건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원인 파악과 예방책 마련보다는 보여주기식 처벌에 매진하는 듯하다. 실제 문재인 정부 때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단지 간호사 감독을 못 하였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번 대구 응급실 사망 사건과 관련된 응급의학과 전공의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사고는 왜 일어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중 하나는 안전 예방을 위한 재정 마련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은 누구나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간호사 1명당 돌보는 환자 수는 평균 16.3명에 달한다.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 수가 많다 보니 근무환경은 열악하고 쉴 틈조차 없다 보니 제주대병원 사고 같은 약물 오남용 위험성도 있다. 왜 병원은 간호사를 충분히 채용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바로 비용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 간호관리료는 6인실 기준 하루 1만513원에 불과하다. 한 달에 환자 20명을 간호하고 받는 600만원으로 3교대에 필요한 간호사 4명을 채용하고 1명이 8시간 동안 환자 20명을 간호해야 한다. 업무가 가중되고 사고 예방을 위해 혹독하게 하다 보니 '태움' 같은 문화도 생겨 병원은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뇌수술 같은 필수 중증 의료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구 10만명당 한국 신경외과 전문의 수는 4.7명으로 OECD 평균인 1.3명에 비해 3배 이상 많다. 뇌출혈 같은 생사가 걸린 질환을 보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한순간도 편히 쉬지 못한다. 응급상황의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중증 의료 특성상 불가항력적으로 사망률도 높다 보니 의료 소송도 많다. 이리 위험하고 힘든데 보상은 터무니없다. 뇌출혈 환자 뇌동맥류 결찰술 수가는 일본은 1천280만원인데 한국은 280만원에 불가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신경외과 전문의 다수는 뇌 분야 전공을 포기한다.
일부는 의사를 더 뽑아서 신경외과 의사를 더 배출하라고 한다. 지금도 신경외과 의사들이 뇌전공을 포기하는 마당에 더 뽑아봐야 다른 전공을 선택하지 뇌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응급 및 중증 의료를 살려 국민이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응급의료와 생명을 다루는 수술에 걸맞은 적절한 보상을 해주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중증 및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고 그 재정은 건강보험 등으로 국민이 분담해야 한다고 하면 외면하곤 한다. 정치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선거 때마다 지지율을 의식해 선심성 정책만 내세우지 실대책 수립은 외면한다.
중증 및 필수의료 개선을 위한 가장 큰 난관은 한국 의료 수가가 원가의 70% 수준에 불과하다고 국가도 인정한 저수가이다. 저수가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장래에는 한국에서 뇌수술을 못 받게 될지도 모른다.
산업 등 사회 분야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면 적정 비용을 지불하고 국가가 충분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듯이 의료 또한 마찬가지이다. 충분한 재정확보와 지원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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