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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
내일은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월15일이 '독립기념일'로 의결된 후 같은 해 10월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면서 탄생했다. 최초의 광복절 기념식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8월에 대구의 경북도청에서 열렸는데, 왜인지 대통령 연설문은 이를 제2회 기념식으로 지칭했다. 1951년 기념식은 부산에서 있었다. 광복절 행사가 서울에서 처음 열린 것은 1952년이었다. 이때는 이승만의 2대 대통령취임식과 함께 진행했다. 광복절이 6·25전쟁과 함께 시작된 것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대다수 한국인은 8월15일이 광복절인 것에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광복절 날짜로 '8월15일'은 문제가 있다. 많은 한국인은 일본 천황이 1945년 8월15일 정오에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날이 광복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다. 일본 천황은 1945년 8월15일에 결코 항복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라디오 방송, 이른바 '옥음방송'은 '종전조서'라는 문서를 낭독한 것인데 이 문서 어디에도 '항복'은 없다. 해당 문서는 일본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역사책임·전쟁책임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피해자 일본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패전 이후 일본의 장기전략 지침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 후 패전 상황에 대한 전략을 짜서 1945년 8월15일 정오에 천황의 목소리로 국민에게 전파한 것이다. 그 메시지에서 이전 전쟁은 여전히 아시아를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었고 당연히 역사적 반성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이렇게 일본이 자기 전략에 활용한 날짜를 광복절로 삼은 것이다. 광복절이 8월15일인 이유는 문제가 심각한 '천황의 목소리' 이외에 다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 정리를 8월15일에 기념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은 10월25일이다. 중국, 러시아, 몽골은 9월3일이고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는 현지 일본군이 항복하거나 무장 해제된 날에 종전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필리핀은 9월3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9월12일, 타이와 미얀마는 9월13일이다. 미국은 9월2일을 '대일전승기념일'로 기념한다. 일본도 1952년까지 9월2일이 '항복기념일'이었지만 1955년에 탄생한 자민당 정부는 항복기념일을 없애고 8월15일의 '종전기념식'만 남긴다.
일본이 항복한 날은 국제법에 따르면 8월14일이나 9월2일이어야 한다. 8월14일은 일본 정부가 포츠담 선언을 공식 수락한 날이고, 9월2일은 일본 정부 대표가 미국 군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한 날이다. 천황이 다른 날도 아니고 8월14일에 옥음방송을 녹음한 것은 포츠담 선언 수락 날짜에 맞춘 것이다.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9월2일이나 3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도 국제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8월15일 광복절은 일본 천황의 목소리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전략에 보조를 맞춰주고 있는 셈이다.
8월15일에 광복절을 기념하는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날은 일본 정부가 항복의 기억을 지우면서 천황의 목소리를 활용해 전략적으로 전후 정치를 시작한 날이다. 8월15일의 문제가 믿어 의심치 않는 형태로 78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현대사의 시작 시점에 대한 주체적 인식 결여와 더불어 여전히 스며있는 식민지 역사의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에 대한 주체적 기준이 절실하다. 이는 미래 전략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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