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리베가스' 스틸컷. 〈영남일보 DB〉 |
내 인생의 단편영화는 고(故) 김선민 감독의 '가리베가스'다. 이 영화는 2005년 김선민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만든 19분짜리 작품이다. 영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제목인 가리베가스는 가리봉동과 라스베가스(라스베이거스)가 합쳐진 말이다. 당시 2000년을 전후해 가리봉동은 큰 변화를 맞고 있었다. 한국 수출산업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산업 단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리베가스는 그런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제목인 셈이다.
영화는 구로공단을 떠나야 하는 선화라는 한 여성노동자의 이삿날을 보여준다. 그 이삿날, 이제는 이곳에 정착해 임산까지 한 옛 동료이자 친구인 향미와 함께 공사 중인 크레인이 우후죽순 보이는 옥상에서 마지막 빨래를 걷는다. 또 새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남게 되자 그는 다른 쪽방의 이웃에게 조심스레 건네준다. 옮기던 옷장이 이삿짐 아저씨의 실수로 망가지자, 왠지 모를 속상함에 선화는 그만 화를 내고 말지만 이내 사과한다. 어느덧 이삿짐 정리가 마무리될 즈음, 선화는 이사 나가는 방은 청소하는 게 아니라는 이삿짐 아저씨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들어올 누군가를 위해 청소를 해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살았던 쪽방에서의 경험을 편지에 담아 남겨두기로 한다. 하지만 새로이 방을 쓰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선화가 남긴 편지의 글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이삿짐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나는 선화의 표정에는 새로운 출발과 같은 희망보다는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더 커 보인다.
사회의 변화 속에서 그저 떠밀리듯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 그것은 아마 감독 자신도 구로공단의 노동자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한 감독의 시선 혹은 태도는 나에게 무척이나 깊이 각인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에게 무한한 고마움 같은 게 느껴졌는데, 그건 어떤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저 내 인생의 영화가 아니라,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가 되었다. 이 지면을 빌려 영화를 남겨준 고 김선민 감독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
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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