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팁(Tip) 권유가 불편한 DNA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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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28  |  수정 2023-08-28 06:52  |  발행일 2023-08-28 제27면

[월요칼럼] 팁(Tip) 권유가 불편한 DNA
장준영 논설위원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말 문인 이조년 선생이 봄밤의 정서를 표현한 시조 '다정가(多情歌)'다. 젊은 시절 보이지 않았거나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과 정서가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훅 다가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새싹이 싱그럽고 꽃이 예쁘고 사랑스럽다거나 떨어지는 낙엽이 아쉽고 서글프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하면 대충 그런 나이대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느낌은 정(情)과 한(恨)의 반복으로 점철된 민족 특유의 정서가 알게 모르게 기저에 깔려있음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팁(tip) 문화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공식적인 비용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게 일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가 훨씬 더 많다. 물론, 서비스에 감동하거나 진심으로 고마워서 건네는 팁은 한국을 비롯, 상당수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말 그대로 자율이었고 자신의 선택에 따른 부담 없는 행위였다. 논란의 핵심은 강요당하는 느낌이다.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팁 어떤가요'로 요약되는 안내문이 적잖이 불편하고, 때에 따라서는 불쾌하기도 하다. '내키지 않으면 안 주면 된다'고 쿨하게 넘어갈 수도 있으련만, 다정(多情)이 병인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들에겐 사실상 의무가 될 수도 있고 '쪼잔한 손님' '매너없는 손님' 등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만큼 여간 찜찜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된다.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기사에게 팁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고 일부 식당과 카페에서도 팁을 권유하는 문구나 팁박스를 비치해 놓고 있다. 누리꾼들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다르지만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겐 팁이 임금을 보전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관련법이 시행되고 있고, 행여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그걸 업주가 아닌 소비자가 왜 부담해야 하느냐는 불만과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등의 순기능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불친절하다고 비용을 깎아주지는 않기 때문에 합리적이진 않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부가가치세나 봉사료 등을 별도로 표기할 수 없고 손님이 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최종가격을 표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대놓고 요구한다면 엄연히 불법이지만 강제성을 띠거나 의무가 아니라면 문제 삼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팁, 괜찮으세요?"라고 권유받는 순간,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는 심성을 가진 이들은 무척 곤혹스러울 것이다. 팁 문화가 확산되고 정착되면 사실상 가격이 오르는 셈이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기도 한다. 아무리 자율이라고는 하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주문을 하거나 계산할 때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안내문구나 권유형 질문을 마주하면 당연히 신경이 쓰인다. 속정이나 잔정이 많을수록 더욱 불편해진다. 서비스업을 이용할 때마다 심적 갈등을 겪을까 싶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얼마를 줘야 하지?' '안 주면 싫어하려나?'…. 상대의 심기가 걱정스럽고 배려가 익숙한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다정도 병인가 싶다.

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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