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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보차오 지음/김성일 옮김/시대의 창/360쪽/2만2천원 |
1년 365일을 고주망태가 되었다는 자칭 주선(酒仙) 이백은 술꾼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주태백'이라고 할 정도다.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중독전문 의사인 저자가 고찰한 당송시대 시인(문인) 14명의 음주 진찰록이다. 그들의 '시(詩)'와 '사(詞·시문)'를 통해 현대 의학의 눈으로 접근한 저자는, 시인들의 음주 스타일과 주벽 등 음주 양상에 대해 흥미진진하고 다채로운 진단을 내린다. 시인들의 주량을 계산하거나 술을 즐기는 까닭을 생리학적으로 분석하고 기이한 주벽의 원인을 파헤치는 등 시인 개개인의 음주 행태와 중독 의학의 연구를 흥미롭게 접목했다.
문학작품, 특히 시와 사에 나오는 술과 관련한 이야기에는 멋과 향이 있다. 한마디로 '풍류'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중독의학'은 일견 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극인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둘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 독자에게 풀어놓는다. 책을 읽는 동안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고, 술을 끊고 싶기도 한 심리가 동시에 발동한다.
송나라 문학의 거장 소식(소동파)은 술 담그는 일에 진심이었다. 술 담그기뿐만 아니라 음주도 즐겼는데 알딸딸한 '황홀' 상태에 빠지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주량은 작은 맥주 한 캔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 최고 시인이자 시선(詩仙) 이백은 술을 애정하기에 술을 즐겼고 이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성(詩聖) 두보는 장기간의 실업과 자녀의 죽음으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술을 마셨다. 북송의 '슈퍼 아이돌' 유영은 음주를 사로 옮기며 음주의 아름다움과 알코올의 영향을 언급했다. 북송의 여성 문인 이청조는 소녀 때부터 술을 마셨는데 만년이 되기까지 허구한 날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이백과 두보의 망년지교(忘年之交)인 하지장은 술에 취해 말을 타다가 우물에 빠질 정도였고, 음주 후 섬망 증세(의식장애)가 있었다. 하지장이 세상을 뜬 뒤 이백은 술을 마주하니 하지장이 생각난다는 시를 짓기도 했다.
당송시대 시와 사에 등장하는 술은 정서를 자극하는 매혹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오늘날에도 술의 이미지는 매우 풍부해 여전히 문화를 통해 노래의 주제가 되고 있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술을 문학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지만 과학으로 해석한 사람은 적다. 문학적 시각에 의학상식과 기본 과학 개념을 더한다면 작품 속 술에 대한 접근 방법은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욱 다양하고 폭넓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시인의 시와 사에 넌지시 드러난 정서와 정보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공감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문학과 의학에 앞서 삶에 풍성함을 더하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하는 술 앞에서 인간이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도 전해준다. 이 책은 우리를 갖가지 중독으로 내모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람으로 살면서 지켜야 할 것을 오랜 역사 속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책은 1·2부, 특집으로 구성됐다. 1부 '그대, 한 잔 드시게'에서는 특이한 주벽이 있는 시인들을 다루었다. 2부 '그대, 술잔을 내려놓으시게'에서는 음주를 즐겼으나 어떤 식으로든 금주를 시도하거나 성공한 시인들이 등장한다. 술 권하기를 좋아한 백거이, 기발한 방법으로 술을 마셨던 석만경, 단계별로 금주를 실행했던 매요신, 금주하려고 노력한 양만리 등의 사연이 소개된다.
임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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