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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 정해창의 청와대 일지'를 출간한 정해창 〈재〉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이사장. |
"노태우 대통령은 권위주의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시대를 여는 큰일을 맡아야 했습니다. 지극히 어렵고 힘든 일을 참으로 잘 해내셨습니다."
6·29선언을 통해 6공화국을 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민주화시대 초입에서 격랑을 헤치며 대통령을 보좌한 정해창 〈재〉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이사장이 회고록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 정해창의 청와대 일지'를 출간했다. 회고록은 비서실장으로 재직(1990년 12월~1993년 2월)하며 기록한 8권의 '업무일지'를 바탕으로 저술했다. '승정원일기'의 현대판 버전이라 하겠다.
7년여의 집필 기간 정 이사장은 격동기 정치사를 가감 없이 담아냄으로써 '객관성이 담보된 사료'로서의 가치를 높이려 했다. 또한 미처 몰랐던 '대통령 노태우'의 참모습을 통해 그 시대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했다.
정 이사장은 때가 되면 말없이 물러나는 게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길이라 여겼으나, 긍정적이었던 노태우시대에 대한 평가가 '비자금 사건'으로 바닥을 치는 상황에 직면하자 생각을 바꿨다. 엄연한 업적을 폄훼하고 역사적 사실까지 왜곡하는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만 없었던 것. 그는 "'당시 그 일'에 참여했던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진솔히 기록해 두는 게 뒷날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며 "다만 잘못에 대한 질책은 아무리 따가워도 달게 받을 일"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6공화국에 대해 "굴곡과 파란이 끊이지 않았던 헌정사에서 의미 있는 기간"이라고 평가했다. 북방정책을 통해 활동무대를 전 세계로 넓혔으며,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었고, 민주화도 이뤄내는 등 뚜렷한 성취가 있었다는 것. 장기집권을 막고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자는 국민적 요구에 따른 '5년 단임 직선제'의 입법 취지도 지켜져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직 대통령 가운데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주장이 만연해 있다. 정치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 정치가 성공하지 못한 사실은 곱씹어 볼 일"이라고 했다.
그가 바라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확고한 비전을 가진 지적(知的) 대통령으로, 외유내강 리더십의 진수를 보이며 과도기적 난관을 극복한 정치지도자'였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적지 않은 치적을 평가받았으나 비자금에 묻혀 마치 실패한 대통령처럼 됐다"며 "과오를 덮기에 모자람 없는 공적도 있다. 적어도 무난히 소임을 완수했다"고 말했다. 6공화국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를 공평히 평가하면 '실패한 대통령'은 없을 것으로 본다는 정 이사장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이런저런 평가에 휘둘릴 일이 아닌, '역사의 몫'으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며 훌륭한 대통령을 만들 줄도 아는 나라로 발전하길 소망했다.
책에는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복잡다단한 국정 보좌에 전념한 비서실장의 긴장된 일상이 잘 그려져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안받은 국가안전기획부장(국가정보원장)과 감사원장 등 국가 요직을 완곡히 고사한 사례에서는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회고록은 노 전 대통령 영전에 바쳐졌다.
글·사진=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 정해창 〈재〉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이사장
경북 김천 출신으로 김천중·경북고·서울대(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학(SMU) 대학원에서 비교법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3학년 때인 1958년 사법·행정 양 과에 합격했다. 대구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법무부 차관, 대검찰청 차장, 법무부 장관(36·37대) 등을 역임했다. 이후 형사정책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엔 한국범죄방지재단과 다산(茶山)학술재단을 설립해 20여 년간 민간 차원의 범죄예방과 다산을 연구하고 재조명하는 일에 매진했다. 재경 김천향우회장, 송설당교육재단(김천중·고) 이사장, 대경육영재단 초대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고향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홍조·황조·청조근정훈장,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상(2007년), 천고법치문화상(2015년) 등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대나무 그 푸른 향기' '형정의 길 50년' 등이 있다. 정 이사장은 매일 사무실(우산흠흠재)로 출근해 방문객을 맞으며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있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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