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내 쉴 곳은 작은…

  • 박철하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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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21  |  수정 2023-09-21 08:05  |  발행일 2023-09-21 제14면

[문화산책] 내 쉴 곳은 작은…
박철하<작곡가>

작은 예배당에 마련된 무대에 허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박수를 받으며 세 줄로 섰다. 단정한 자세와 맑은 눈으로 어린이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자, 군복 입은 청중들은 환호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네…"

2016년 개봉한 한국 영화 '오빠 생각'에 나오는 장면이다.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이 화음을 맞춰 '즐거운 나의 집'을 노래하는 이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영화는 6·25전쟁 당시 실존했던 어린이 합창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으로 가족과 동료를 잃은 군인 한상렬(임시완)이 전쟁고아들과 함께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어 전장과 군 병원을 다니며 위문 공연을 하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 공연에서 부른 '즐거운 나의 집'은 미국에서 사랑받던 노래 '홈 스위트홈(Home Sweet Home)'을 김재인이 우리말로 번역한 곡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23년에 작곡된 이 노래는 미국의 극작가이자 연극배우였던 존 하워드 페인(1791~1852)이 대본을 쓰고, 영국의 작곡가 헨리 비숍경(1786~1855)이 작곡한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에 포함된 노래이다. 그런데 오페라는 잊히고, 그 곡 중에서 '즐거운 나의 집'만이 남아서 지속해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가 작곡된 해, 1823년은 11세의 프란츠 리스트가 첫 공연을 하여 53세의 베토벤에게 축하를 받았던 해이다. 베토벤의 '장엄미사', 슈베르트의 첫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등이 그해에 작곡됐고,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앙리 파브르가 태어났다. 미국이 '먼로 선언'을 발표하여,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행사하던 식민지 영향력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의 일이었다.

노래 '홈 스위트홈'은 그로부터 약 40년 후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크게 사랑을 받았다. 집 떠나 전쟁터에서 지쳐있던 군인들은 북군, 남군 할 것 없이 이 노래를 사랑하였다. 총구를 겨누며 서로 위협하던 남군과 북군은 이 노래의 연주가 들리면 "오 사랑 나의 집,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네" 하며 한목소리로 따라 불렀다고 한다.

남북전쟁에서 불타는 적개심을 누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 '잔잔한 노래'는 6·25전쟁 중에도 어린이 합창단의 목소리를 통하여 죽음의 공포와 가족을 잃은 외로움을 이기는 힘이 됐던 것이다. 가을이 되고 곧 추석이다. '쉴 곳'이 되어주는 '작은 내 집'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있는 작은 집! 박철하<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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