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20년 전 처음 캐나다에 갔을 때, Thanksgiving (혹은 Thanksgiving Day·추수감사절)이 10월 초라 놀랐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네 번째 목요일이라 크리스마스·연말분위기와 이어지는 느낌인데, 10월 두 번째 월요일인 캐나다의 Thanksgiving은 한국 추석과 비슷한 시기이다. 북미에서도 Thanksgiving은 대가족이 모이는 큰 명절이다.
어느 해 미국인 친구를 따라, 하와이의 빅 아일랜드에서 Bed & Breakfast(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숙박시설)를 운영하는 그 애 부모님 댁에 가서 추수감사절을 보냈다. 1년에 한 번 추수감사절 때는 자식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도록 숙박시설 문을 닫는다고.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여 식사하기 전 돌아가며 "I am thankful for…(나는 …에 대해 감사해요)"라고 한마디씩 감사를 나누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명절도 풍성한 덕담과 인사가 오가지만, 상대방에 대한 축복이 아닌 자신이 감사한 것을 가족모임에서 공개적으로 나누는 것을 본 기억은 없어서.
한국 지인들이 흔히, 캐나다에서 '교수씩이나' 하는 싱글여성의 삶은 화려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달리, 너무 추운 날씨, 처음 접하는 북미 중서부 문화, 학문적 지향점이 다른 직장문화 등 사스카툰에서의 지난 10여 년은 내게 낯설고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이란 기억이 강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페이스북의 기록을 보니, 나는 사스카툰에서 그간 참으로 풍성한 추석과 Thanksgiving 명절을 보냈었구나. 기억이란 왜곡되기 마련이다. 어느 해는 한국지인 댁에서 직접 송편을 만들어 먹고 그 다음 날은 중국인들 중추절(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명절) 행사에 가서 전통악기 연주를 듣고 문케이크(월병)를 먹었다. 어느 해는 집에서 전 부치고 잡채 하여 두 번의 추석 파티를 열었고 결혼하여 아기를 데리고 온 졸업한 외국인학생 가족 등과 참으로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해는 캐나다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구운 칠면조 요리와 크랜베리 소스, 호박파이 등으로 북미식 Thanksgiving 파티를 집에서 열었다. 또 어느 해는 우리대학 학부학생들 대상의 글로벌 K-컬처 클럽이란 동아리를 새로 만들어, 다양한 지역 한인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아 대학에서 성대한 추석행사를 열기도 했다. 삶이란 이렇게 머무는 곳마다 주인 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나눌 때 충만함과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은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다들 바쁘게 사느라 만나기 힘든 가족들이 모여 기쁘고 행복해야 할 명절이 더 이상 명절증후군 등의 스트레스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기를 바란다. 과도한 가사노동이나 정치 관련 가십으로 갈등과 논쟁을 부르는 피상적인 시간 말고,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끼리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지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듣고 나누는, '정서적으로 친밀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요즘 듣고 있는 어느 온라인 수업에서 2주간 매일 감사 기도하기 과제가 있는데,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에게 감사하기'로 주제를 정하고, 불안하고 조마조마 걱정 많은 성격에도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나에게 감사하고 있다. 오늘 기도 때는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내 삶과 그 길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한다. 내 의식이 가는 곳으로 내 에너지가 흐른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감사하나요? 독자님들 모두 해피 Thanksgiving. 해피 추석.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