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고통체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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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2 06:46  |  수정 2023-10-12 07:00  |  발행일 2023-10-12 제23면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타인의 학대 행위에 성적 만족을 느끼는 '마조히스트'가 드물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정신병일 뿐이다. 정상인에게는 어떤 종류의 고통도 달가울 리 없다. 문제는 인간의 삶에서 고통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석가모니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29세 때 출가한 이유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통 때문이었다. 그는 6년 만에 삶의 진리가 '무아 연기(無我 緣起)'임을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깨달음과 거리가 먼 중생들은 여전히 '고통의 바다'에서 유랑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문제가 되는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주로 정신적 괴로움이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문명은 안락함과 즐거움을 한껏 제공하지만 한편으론 인간 내면을 극도로 황폐화시킨다. 살벌한 생존경쟁과 단절된 인간관계,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현대인을 노이로제(신경증) 상태로 내몬다. 이 같은 정신적 고통은 어린 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무의식 수준에서 감정과 생각의 형태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두려움, 근심, 불안, 경멸, 증오, 갈망 등 온갖 부정적 감정은 해소되지 못한 정신적 고통의 분절된 형태다.

현대의 영적 지도자 에크하르트 톨레는 인간 내면에는 '고통체(painbody)'가 실재한다고 가르친다. 평소에 잘 못 느끼더라도 외부 자극이나 어떤 계기로 활성화되면 '폭발'하기 마련이라고. 누군가가 별 이유도 없이 토라지거나 화를 낸다면 잠자던 고통체가 깨어난 것일 수도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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