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망해가는 대한민국?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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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6 06:51  |  수정 2023-10-16 06:50  |  발행일 2023-10-16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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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 직후 국토의 80%는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로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이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70년 후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4만달러를 바라보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장 신화다. 기적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올해 미국 매체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경제·군사·외교력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 '세계에서 강력한 국가' 6위에 랭크됐다. 우리가 지난해보다 두 계단 상승하면서 8위로 내려앉은 일본을 제친 것. 반도체·스마트폰·철강·조선 등 기간산업이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 있는 덕분이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지구촌 선박 발주량의 37%를 수주하는 압도적 세계 1위다. 여기에다 K팝, 드라마 등 한류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엔 이르다. 화려한 압축성장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갈수록 짙어지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 가계부채, 사교육비 지출, 근무시간 등 한국의 1위 항목이 적지 않다. 나아가 성형 건수, 명품 소비, 자살률, 저출산은 불명예스러운 세계 1위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게 저출산임은 물론이다. 정부가 지난 16년간 저출산 대책비로 260조원을 쏟아부었다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되레 출산율 하강 곡선은 가팔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감각해진 탓인지 위기 의식도 별로 없다. 정작 해외에서 한국을 더 걱정한다.

이달 초에 구독자 수 2천만명이 넘는 인기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가 올린 '한국은 왜 망해가나'라는 제목의 영상이 꽤 화제가 됐다.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이어진다면 100년 안에 청년 인구가 94%나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영상 섬네일에 녹아내리는 태극기를 내걸어 섬뜩한 경고를 날렸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찍힌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인종·성별 분야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한국의 저출산이 국제 이슈가 되면서 해외 석학들의 조언도 잇따른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은 육아가 여성 몫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있다"고 꼬집었다. 기성세대와 기업 문화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충고다. 타당한 지적이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알다시피 저출산은 사회·경제·문화적 요인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단시간에 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우리 국민은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끝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 의식 수준도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높다. 쉽게 망할 리 없다. 저출산은 '세대'가 아닌 '시대'의 문제다. 온 마을을 넘어 온 나라가 아이를 키운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가 더 낳은 미래를 확신하면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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