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11] 덕천마을 송소고택·송정고택·초전댁

  • 류혜숙 작가,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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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5 07:43  |  수정 2023-10-25 07:43  |  발행일 2023-10-25 제16면
99칸 송소고택 지은 심호택, 의병활동·국채보상운동 지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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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송소고택의 풍경.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이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 지은 집으로 대문채, 안채, 별채,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방앗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벚나무 가로수 길에 푸른 그늘이 맑다. 길가 숲속에는 연못과 정자가 버드나무 몇 그루에 안겨 아늑하다. 가로수 길의 끄트머리에서 조산무더기를 지나면 환하게 마을이 열린다. 사방 산이다. 마을 앞으로 천이 흐르고 마을의 한가운데는 넉넉한 들이다. 기와를 인 집들은 낮은 산 아래에서 남쪽을 바라본다. 반듯한 흙돌담이 여유로운 골목길을 만들고, 크고 작은 텃밭마다 씻은 듯한 푸성귀들이 단정하다. 깨끗한 마당과 수아한 화단 너머 섬세한 문살이 성정을 드러내고 윤나는 마루에 어린 햇빛과 바람이 매화와 같은 운치를 그린다. 산처럼 오래된 나무들과 신성을 지키는 솟대들이 일러주기를, 이 마을에는 고려의 마지막 날 불사이군의 결의를 지키고자 두문동으로 들어간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슬로시티 청송의 덕천마을, 청송심씨(靑松沈氏)의 본향이다.

1880년 건립 송소고택 국가중요민속자료
솟을대문에 오세창이 쓴 '송소고장' 현판
숙박체험·고택음악회 공간으로도 활용
이웃한 송정고택 1914년 심상광이 건립
1806년 건축 초전댁 아담한 자태 친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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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택 차남이 조성한 송정고택은 송소고택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송소고택

마을의 중심에 아흔아홉 칸 옛집인 송소고택이 있다. 조선시대 만석꾼이란 호칭으로도 모자라 '이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1880년경 지은 집이다. 송소고택은 대문채, 안채, 별채,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방앗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간은 구분되어 있으며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이 있다. 대문을 포함해 12개나 되는 문과 조르라니 줄지어 선 장독들, 세 개나 되는 우물이 집의 규모를 말해준다. 여인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주는 헛담(내외담)과 여인들의 눈이 되어 준 구멍담, 그리고 기와로 장식한 아기자기 예쁜 담에서 유교사회 여인들의 삶을 슬쩍 느낀다. 고아한 화단에는 은행나무, 단풍나무, 옥매화, 향나무, 전나무 등의 잘생긴 나무들과 온갖 화초가 아취를 자아내고 팔각무늬 문과 빗살무늬 교창, 띠살문, 용자살문 등 다양한 형태의 문살에서 섬세한 솜씨를 가늠한다. 안채의 다락과 사랑의 반침은 언제나 궁금하다.

심원부의 후손 중 영조 때 사람 심처대(沈處大)가 있다. 그는 선대가 살던 덕천마을에서 분가해 파천면 지경리 호박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가난했지만 성실했고 효성이 지극해 매일 덕천마을의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거르지 않았다. 어느 날 문안 길에 그는 눈밭에 쓰러진 노스님을 구하게 된다. 이후 심처대 집안의 가세는 나날이 좋아져 만석에까지 이르렀고, 무려 9대에 걸쳐 만석의 부를 누렸다.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심처대의 7대손이 송소 심호택이다. 그는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로 이거하면서 송소고택을 지었다. 13년간 수십 명의 인부가 집 앞 움막에서 먹고 자며 집을 지었고, 이 집 대문 여는 삐거덕 소리로 마을의 아침이 열렸다고 한다.

심호택을 99칸이나 되는 거대 주택을 지은 단순 거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심호택은 구한말 전국에서 벌어진 의병활동에 많은 군자금을 소문 없이 지원했고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청송 일대에 취지서를 돌려 나라를 구하는 일에 모두 동참하자고 호소한 지사였다. 광복 이후 심호택의 아들 심상원과 그의 아들 심운섭은 가히 선구적이라 할 수 있는 중대한 결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소유하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소작농들에게 분배함으로써 지역에서 최초로 자작농이 창설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로써 심부자는 '부자'를 내려놓았다. 솟을대문에 송소고장(松韶古莊)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고장(古莊)은 고택(古宅)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말의 독립 운동가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서예가 오세창(吳世昌)의 글씨다.

집은 1979년부터 25년 정도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사이 도둑이 대청마루의 팔각무늬 문까지 뜯어 갔고 풀이 사람 키만큼 자랐다고 한다. 지금 송소고택에는 심처대의 11대손이 산다. 주인 내외가 매일 기름칠로 청소하는 집은 강건하고 윤기가 난다. 송소고택은 오늘날 전통문화 숙박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책방, 누마루방, 안사랑방, 찬모방, 별채, 행랑 등 13개의 객실이 있다. 고택에서는 연중 3, 4회 고택음악회가 열리며 떡메치기, 다도, 전통혼례, 청송사과따기 등의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한국관광의 별 숙박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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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댁은 청송지역 주거 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손꼽힌다.

◆송정고택

송소고택의 왼쪽에는 송정고택이 이웃한다. 심호택의 차남인 송정(松庭) 심상광(沈相光)의 집으로 1914년에 지어졌다. 심상광은 일제강점기 때 안동 도산서원장, 병산서원장, 청송향교 전교 등을 지낸 유학자로 지금도 매년 유생들이 송정학계를 열고 있다고 한다. 송정고택은 송소고택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보여 주는 조선 후기 상류층의 전통 가옥이다. 특히 순량한 정원과 양지바른 뒤뜰 우물가의 장독대와 멋진 향나무가 마음을 빼앗는다. 집안 곳곳에는 꽃이 그려진 고무신과 신비로운 청송 꽃돌로 조각한 두꺼비들이 앉아 있다. 방 안이나 마루에 놓여있는 오래된 가구들은 대부분 선조 때부터 실제로 사용해 오던 것들이라 한다.

마루에 오우당(五友堂) 편액이 걸려 있다. 의친왕의 글씨다. 사랑채에는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던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장군이 종종 찾아와 머물렀다고 한다. 송정고택 뒤편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철기 장군이 거닐던 산책로다. 언덕바지의 큰 소나무에 기대어 내려다보면 송정고택과 덕천마을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천마을의 고택들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다. 대문이 아예 없는 집도 수두룩하다. 송정고택의 솟을대문도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사람들이 와서 마당을 밟아 주면 땅이 다져져 풀이 안 난단다. 활짝 대문 열린 마당에 꾹, 꾹, 걸음을 보탠다. 착한 삽살개가 졸랑졸랑 이방인의 걸음을 쫓는다. 송정고택 또한 전통문화 숙박체험이 가능하며 경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초전댁

덕천마을의 깊숙한 자리에 초전댁(草田宅)이 있다. 첫눈에 친근한 감정이 드는 집이다. 정면 출입문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큰사랑, 왼쪽에 고방과 작은사랑, 외양간(현재 창고)이 연접해 있는데 안채가 '∩'자형으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경북 북부 지방 양반 가옥의 평면 구성으로 청송지역 주거 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큰사랑은 2칸의 사랑방과 2칸의 사랑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마루 전면의 기둥이 당시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원주다. 건물의 남쪽과 동쪽으로 토담이 있고 담장을 따라 화단이 곱다. 건물 오른쪽에는 예부터 사용해온 오래된 우물이 남아 있고 집 앞에는 작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저절로 피어난 어여쁜 꽃들도 정성으로 가꾸는 화초도 모두 소박하고 순정하다.

초전댁은 1806년에 청송심씨 석촌공파(石村公派) 17세인 심덕활(沈德活)이 건립했다. 심덕활은 자신의 셋째 아들인 심헌문(沈憲文)을 요절한 아우 심덕종(沈德宗)의 집에 양자로 보냈는데 헌문의 네 번째 돌을 기념하여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1900년에 21세인 심의해(沈宣海)가 고택을 보수했다. 안채 마루의 판문 속으로 보이는 뒤뜰은 그림 같고 사각의 작은 안마당에는 밤마다 우주가 내려앉는다. 처음 집을 지은 이의 마음과 대대로 보살펴온 마음이 더해져 애틋하다. 초전댁은 현재 전통문화 숙박 체험 시설로 활용되고 있으며 경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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