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초고난도' 의대 증원, 어떻게 풀까?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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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1  |  수정 2023-11-01 07:18  |  발행일 2023-11-01 제26면
수도권 빅5 병원 찾는 대구현실

의대정원 증원, 문재인 때 불발

인구 10만명당 의사수 최하위

로스쿨 후 법률서비스 좋아져

필수·지방의료 해법 찾아야

[동대구로에서] 초고난도 의대 증원, 어떻게 풀까?
이효설 사회부 차장

췌장암으로 수도권 '빅5' 병원 중 한 곳의 신세를 져야 했던 동료가 지인들 앞에서 한마디 했다. "죽는 줄 알고 부모님, 장인, 장모까지 다 서울로 따라갔는데, 의사한테 질문 하나 못했다"고 했다. 그 이유가 더 놀랍다. 묻기 전에 (의사가) 미리 설명을 다 해줬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러니까 서울, 서울 하지"라는 말로 자신의 빅5 병원 후일담을 마쳤다. 이 이야기가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서울 병(病)'은 현재도 너무나 유효하다. 가족 중 누가 아프면 바로 서울에 있는 병원부터 수소문한다. 아픈 부모를 지방에 모시면 훗날 한이 된다며 서울 병원으로 바로 갔다는 친구도 있었다. 지역의 한 대학 총장은 "내가 촌 동네에 내려와서…"란 발언을 촌 동네 '촌놈들' 앞에서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부류들의 극단적 서울 중심주의를 엿볼 수 있는 멘트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대구 출신 지인은 명절 때마다 상사에게 "시골 잘 갔다 왔냐"는 인사말을 들어야 해 슬픔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암만 촌 동네란 말에 열 받아도 대구는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가 부족해 앞다퉈 떠나가는 도시가 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인구 237만명, 광역시면 뭐하나. 아이 감기약 처방받으려고 두세 시간을 소아과에서 대기해야 하고, 가족이 한밤중 응급실 갈 일은 생기지 않아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같은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지방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의대 광풍을 잠재우고 지역·필수의료를 위한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그 가치가 크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2020년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대 정원을 4천명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의사들이 파업을 벌이자 굴복했다. 의대 정원이 18년째 3천58명에 묶이게 된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한 해 의대 졸업생 수가 7.26명으로 OECD 39개 회원국 중 이스라엘(6.8명)에 이어 최하위다.

과거, 의사와 함께 고소득 쌍벽을 이뤘던 변호사는 어떤가. 1980년 300명이었던 사법고시 합격자는 2001년 1천명을 넘었고,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연 후 최근 1천700명 안팎이 매년 변호사 자격을 얻고 있다.

한 변호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겨냥해 "변호사 증원으로 먹고살기 팍팍해졌다"면서도 "법률 서비스 접근성은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고 지적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샀다.

정부가 의대 증원 발표를 늦추고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필수의료, 지역의료의 공백 문제를 단순 셈법으로 접근해 밀어붙이는 것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에선 안 될 일이다. 의대 증원을 희망하는 국립, 미니 의대의 요구대로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인상, 지역 의사 우대 등 보상 체계를 제대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걱정되는 것은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대 쏠림의 심화 부분이다. 정부의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에 의대 정원 확대가 겹치면서 벌써부터 반수생 등 대학 중도 탈락 학생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의 손실이다. 정부가 이 '킬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이효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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