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인류의 영원한 주제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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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8 08:20  |  수정 2023-12-08 08:22  |  발행일 2023-12-08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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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830년 12월8일 뱅자맹 콩스탕이 세상을 떠났다. 콩스탕이 죽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국장을 치러 그를 예우했다. 콩스탕이 소설 '아돌프'의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조국이 위대한 예술가를 예의껏 현창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콩스탕은 국회의장을 지낸 자유주의 계열 정치가였다.

1816년 발표작 '아돌프'는 콩스탕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젊은 귀족 아돌프와 백작의 애첩 엘레도르가 연인 사이로 맺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돌프는 자신의 연애가 앞날에 걸림돌로 작용할까 걱정하게 된다. 반면 엘레도르는 점점 사랑에 빠져 자식마저 버린다. 그런 여자가 아돌프는 부담스럽다.

소설 끝자락에 아돌프는 "타인의 행복이 나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든 부담이었다. 지금은 나의 거동을 살피는 사람 하나 없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어느 누구와도 무관한 타인이다"라고 독백한다.

20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상당수 독자는 아돌프에 공감한다. 자신의 연애에 회의를 느끼는 독자들 덕분에, 19세기 정치가 콩스탕은 잊혔지만 (2022년에도 '아돌프'가 번역 출간되는 것을 보면) 소설가 콩스탕은 여전히 생존 문호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본질을 아돌프식 또는 엘레도르식으로 여기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아돌프'가 인류의 영원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평가는 인간성의 근저를 이기주의로 보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랑이 본래 사사로운 일 아니던가!

아돌프와 엘레도르의 사랑에 사회적 동물다운 특성은 전혀 없다. 오늘날의 독자가 '아돌프'에 공감하는 것은 본인 또한 그러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돌프'보다 118년 뒤(1934년) 소설인 현진건의 '적도'에 대한 반응도 그 점을 시사한다. 가난한 청년 김여해는 연인 홍영애가 부자 박병일과 결혼한 뒤 기생 명화를 사랑하게 된다. 박병일도 명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명화의 마음에는 망명 독립투사 김상열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적도'는 '아돌프'와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명화를 위하는 마음에서 김여해는 국내로 잠입한 김상열을 대신해 죽고, 김상열은 명화와 함께 국외로 다시 망명한다. '적도'가 '아돌프'처럼 많은 독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으로도 없다. 보통사람은 사랑 중에서도 사사로운 사랑을 삶의 소일거리로 삼을 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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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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