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시집 '마카다' 펴낸 김계희씨(1) '함바집 40년' 할머니, 시인 됐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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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5 07:34  |  수정 2024-04-05 07:49  |  발행일 2024-04-05 제11면
1950~70년대 추억·가족·자화상 등
99편 삶의 이야기 칠순 맞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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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함바집을 운영하다 시집 '마카다'를 출간한 김계희씨.

이기주의가 만연한 팍팍한 세상이다. '나만 잘살면 돼' 혹은 '나만 아니면 돼'가 통하는 시대. 서로에게 무관심하거나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은 양립이 불가능한 걸까.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데, 주인에게 순수한 사랑을 주는 강아지의 마음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 기사를 쓰는 나 또한 무의식중 이기주의에 동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자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주로 성격이 밝고 쾌활한 이들이 그렇다.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던 중 보게 된 무지개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찬 건강한 사람. 최근 그런 사람을 만났다. 공사현장 식당(일본어 '함바')에서 일하는 할머니, 김계희씨다.

올해 칠순을 맞이한 김씨는 최근 새로운 도전을 했다. 평생 함바집을 운영하며 살다 시집을 냈다. 그는 시(詩)는 물론이고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몇십 년을 함바집 일에 전념한 사람이 칠순의 나이에, 본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도전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김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일하는 함바집을 찾았다.

공사 현장에 들어서는데 그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웃으면서 반겨주는데, 인사에서부터 밝음이 자연스레 묻어 나왔다. 인위적인 밝음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밥은 먹고 왔냐며, 먹고 오지 않았으면 두 그릇도 먹고 가도 된다는 친절도 건넸다. 고향에 있는 할머니가 생각날 정도로 가족만큼 따뜻한 친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밝고 따뜻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 그는 지인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김씨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한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그는 칠남매 중 둘째다. 1950~1970년대 시골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형제들과 돈독한 우애를 쌓았는데, 그 우애를 쌓을 수 있었던 건 첫째인 언니의 덕이 크다고 한다. 언니는 부모님의 빈 자리를 대신할 만큼 동생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고, 늘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낸 시집에도 그런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집의 이름은 '마카다'다. '마카다'는 '모두'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인데, 그의 시에선 혼자 잘 사는 것보다 '모두'가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때론 전문적으로 쓰인 글보다 진정성 있는 글이 마음을 울린다. 김씨의 시들이 그렇다. 등단한 이들이 쓴 시처럼 세련되진 않지만 그래서 새롭다. 표현 하나하나에 신선함과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소재도 그의 인생과 추억, 일상이 대다수로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고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김씨를 만나고, 그의 시를 읽고 나니 내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차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가 언니에게 배웠던 사랑이 이런 게 아닐까. 이젠 내가 사랑을 베풀 차례인 듯하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김씨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도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글=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사진=B-stor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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