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동상(銅像)이몽

  • 김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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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13  |  수정 2024-05-13 06:56  |  발행일 2024-05-13 제22면

[취재수첩] 동상(銅像)이몽
김태강기자<사회부>

최근 대구는 '동상(銅像)'으로 시끄럽다. 달성공원 앞 순종 황제 동상은 지난달 다소 비참한 모습으로 철거됐다. 중구는 2017년 이 동상을 세웠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남순행을 재현하는 '순종 황제 어가길' 사업의 일환이었다. 당시 이 사업은 조성 전부터 '친일 미화' '역사 왜곡' 등의 논란이 일었다. 최근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상으로 인한 교통 혼잡 문제까지 대두되자 중구는 철거를 결정했다. 순종 황제 어가길 조성 사업은 설치에 70억원, 철거에 4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중구는 의견 청취 없이 동상을 설치·철거한다는 후손들의 반발과 혈세 낭비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비슷한 시기 대구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장소는 동대구역 광장과 현재 건립 중인 대구대표도서관 앞이다. 발단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페이스북이었다. 홍 시장은 광주의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관을 언급하며 대구에도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산업화의 출발인 섬유산업 도시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기려야 한다고도 했다. 시민단체 등 일부 반대 의견에도 박 전 대통령 동상 설치를 위한 예산 편성과 조례 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의회를 통과한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 비용은 14억5천만원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뒤로하고, 시기와 방식에 아쉬움이 남는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이 2024년 대구에 꼭 필요한 일인가? 박 전 대통령의 정신을 기리는 방식이 14억여 원을 들여 동상을 세우는 것밖에 없는 것인가? 박 전 대통령은 1968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건립할 때 비용 983만원을 전액 부담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신을 기리는 것은 어려운 시기 시민의 세금으로 그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순종 황제 동상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기 위해선 동상 건립에 의문을 품는 이들의 목소리도 충분히 들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대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은 8천400만원이라고 한다. 최근 임명된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의 말을 빌려본다. 대구 시민의 혈세가 대구 시민의 눈물이 있는 곳에 쓰이길 바란다.김태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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