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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약 80만년 전 불을 발견해 음식을 구워 먹은 게 기술혁명의 서막이었다. 이후 손도끼를 만들어 사냥과 전투를 하고, 식물 재배 기술을 터득하고, 바퀴와 문자를 발명하고, 증기와 전기를 이용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끝이 아니다.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AI(인공지능)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AI의 출현은 우리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엄청난 충격파가 지구촌을 강타하는 중이다. 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진짜 AI혁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음식으로 치면 애피타이저 수준이다. 살짝 맛만 본 AI 위력이 이 정도라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딥러닝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생성형 AI는 못하는 게 없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건 일도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AI는 글, 음성, 이미지 등 특정 분야에 특화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능을 융합한 범용 AI, 즉 AGI가 나올 날도 머지않았다. 이미 오픈AI사는 AGI 시험 모델 격인 음성 AI비서 'GPT-4o'를 선보였다. 최근 공개된 시연 장면을 보면 AI비서는 사람 뺨칠 만큼 똑똑하고 말도 잘했다. 심지어 시연 진행자가 긴장된다면서 숨을 헐떡이는 척을 하자 "당신은 진공청소기가 아니다"며 핀잔까지 줬다. 놀라운 정도를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AGI의 출현은 인공지능이 컴퓨터를 벗어나 실제 물리세계에서도 '만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로봇이나 휴먼바이오 기술과 접목되면 인간과 구분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글로벌 빅테크기업들의 AI로봇 개발 경쟁은 이미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사람처럼 생긴 AI로봇이 거리를 활보할 날이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겠다. 이처럼 AI혁명은 기계와 인간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있다. 어느새 기계의 인간화가 당연시되고 있다. 반면 인간은 기계화되고 있다. 현대인은 자동화된 시스템 속에서 온갖 즐거움과 편리함을 누린다. 하지만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극도로 발달한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가져온 부작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잠시라도 곁에 없으면 불안할 지경이다. 하루종일 눈을 떼지 못하는 중독자들도 많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좀비폰'인 셈이다.
미래학의 대부 레이 커즈와일은 20년 전에 AI 지능이 인류 지성의 총합을 넘어서는 기술적 특이점이 2045년쯤 올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엔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예측이었으나 지금은 특이점 예상 시기가 훨씬 더 당겨졌다. 심지어 이미 특이점을 넘어섰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 시기가 어떻든 간에 AI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앞서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건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인간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기계에 일자리를 뺏기는 건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실직자가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이유는 없다. 한편으론 AI혁명이 새 일자리와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고 있어서다. 인간 본연의 영성 회복이 관건이다. 감성 혹은 창조력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게 없으면 '기계 인간'보다 못한 '인간 기계'가 된다. AI시대는 '호모 사피엔스'를 뛰어 넘는 '호모 스피리투스(영적인 인간)'를 필요로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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