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방식은 다양하다. 운전이나 운동을 할 때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듣기도 하고 카페나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자연스레 듣기도 한다. 이럴 때 음악은 주인공이 아닌, 밋밋함을 희석시키는 조연이다.
음악에만 집중하기 위해 고가의 스피커나 헤드폰 등 음향기기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고급음향기기를 갖추고 전문적으로 음악을 틀어주는 음악감상실이 과거에는 많았다. 클래식이나 재즈 또는 그 당시 잘나가는 음악을 방문객에게 들려줬다. 라디오처럼 신청곡을 받아 사연을 전해주는 곳도 있었다.
음악감상실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뮤직바'라고 불린다. 칵테일이나 하이볼을 한 잔 곁들여 음악을 듣는 공간이다. 예약부터 신청곡과 음료 주문까지 손 안에서 해결하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수를 줄이는 요즘의 뮤직바에 다녀왔다. 이곳에서는 음악이 주인공이다. 그 외에 모든 것은 조연이다.
대구 중구의 뮤직바 '스몰그룹'에서 스크린으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 나온다.
대구 중구 교동의 스몰그룹은 오후 6시부터 1시간50분씩, 세 타임 동안 신청곡을 받는다. 기본 네 곡을 받는다. 곡의 길이나 손님의 수에 따라 신청 받는 음악의 수는 달라질 수 있다. 입장료는 한 명 당 1만5천원이다. 1인 리클라이너석(席)과 2인 쇼파·3~4인 단체석도 있다. 스크린과 떨어진 바(bar) 좌석도 있는데, 바 좌석에서는 음악을 신청할 수 없다.
가게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는 귓속말로 작게 해달라고 직원이 당부한다. 스몰그룹에서는 음악을 뺀 다른 소리는 모두 소음이다. 그리곤 인원수에 맞게 자리로 안내받는다. 기자는 1인 리클라이너석으로 예약했다. 맨 앞이고 스크린의 오른쪽이다. 편하게 눕듯 앉을 수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와 발받침이 있다. 편한 자세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테이블에는 펜과 연필, 방명록이 있다. 누구와 왔는지, 왜 왔는지 적혀있었다. 일기처럼 뭔가를 길게 적은 이들도 있었다.
![]() |
QR코드로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사진은 기자가 주문한 하이볼과 방명록의 모습. |
◆같이 음악 듣는 사이
기자가 예약한 시간엔 기자 포함 2명뿐이었다. 인원이 적으니 신청곡의 수도 적을 수 밖에. 직원이 "음악을 많이 신청해달라"며 "가능하면 다 반영하겠다"고 채팅을 통해 전달했다. 기자는 준비해둔 곡을 모두 소진한 채 기자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내려보랴 유튜브에서 그 곡을 검색해보랴 음악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또 기자는 유튜브와 담 쌓고 살아 미숙한 점도 한 몫했다. 미리 URL을 휴대전화의 메모장이나 자신과의 대화방에 모아두면 이 장소에 온 목적에 충실할 수 있다.
기자는 열 네 곡을 신청했다. 기자는 외국 힙합을 주로 들었고, 충실히 반영했다. 한국 R&B로 마무리했다. 저쪽에서 신청한 싱 스트리트의 OST 중 한 곡을 일종의 답가로 기자도 신청했다. 저쪽은 'Beautiful Sea'를, 이쪽은 'Drive it Like You Stole it'을 틀어달라 했다. 기자가 신청했던 곡 중, 음악만 들어봤고 뮤직비디오로는 본 적 없는 음악을 신청했는데 조금 당황했다. 예술과 외설의 중간 단계인 선정적인 장면이 나와서였다. 음악이 어떤 영상과 재생되는지 확인하면 좋다.
![]() |
'저쪽 손님'이 신청한 곡을 샤잠으로 검색해 캡처해둔 모습. 몇몇 곡은 공식음원이 아니라 검색이 되지 않았다. |
기자와 같은 시간에 온 '저쪽 손님'은 인디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기자는 그 영역에 문외한이라 아는 노래가 없었다. 저쪽 손님의 신청곡은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싱 스트리트'에 수록된 밴드 음악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열 네 곡을 신청했다. 저쪽 손님이 신청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 기자는 음악검색 어플리케이션 샤잠(Shazam)으로 그 음악 검색하고 캡처하면서 저장했다. 저쪽에서 신청한 곡 중 세 곡은 지금 기자의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했다.
![]() |
커다란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온다. |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에 방문한 스몰그룹은 시원했다. 에어컨과 서큘레이터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체질에 따라 추울 수도 있다. 카디건 같은 가벼운 겉옷을 준비해 가면 좋다. 그러나 알코올을 마시면 몸의 열기가 올라가니 얼른 술을 마셔 체온을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 취해 상기된 마음이 음악에 더 어울질지도 모른다.
스몰그룹 같은 뮤직바는 '분위기를 파는 곳'이다. 뮤직바에서 돈을 지불하고 음악을 듣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 음악이라는 것은 집에서도 가만히 누워서 공짜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직바는 오롯이 음악과 함께 재생되는 영상을 감상하며 그 분위기를 느끼는 곳이다.
다른 사람이 신청한 곡을 들으며 그 취향을 엿 볼 수도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르는 작품을 보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 이것이 스몰그룹과 같은 뮤직바에 가는 즐거움이다.
글·사진=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저쪽'의 열 네 곡
1)Sing Street - A Beautiful Sea 2)제임스 골웨이 - Flute and Jazz Piano Irlandaise 3)짙은 - 여름밤 4)안희수 -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5)Wouter Hamel - Breezy 6)이요한 - FRIDAY NUGHTS (with bottle gods) 7)최유리 - 밤, 바다 8)알레프 - 다신 사랑하지 않을 다짐 9)이창섭&유리아 - Steal Your Rock n Roll(뮤지컬 '맴피스' 수록곡) 10)015B & 오왠 -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11)CAMO - Wifey (feat. Simon Dominic) 12)검정치마 - 상수역 13)Christian Kuria - Deep Green 14)Fromm - 숨이 될 거에요
♬'이쪽'의 열 네 곡
1)Lana Del Rey - Young and Beautiful (영화 '위대한 개츠비' 수록곡) 2)Calvin Harris - Lean on Me (feat. Swae Lee) 3)Usher, H.E.R - Risk it All 4)Roddy Rich - High Fashion(feat. Mustard) 5)Sing Street - Drive it Like You Stole it 6)Kita Alexander - 7 Minuetes in Heaven 7)Taylor Swift - Lover 8)김오키 - 내 이야기는 허공으로 날아가 구름에 묻혔다 9)Frank Ocean - Nights 10)Sam Ock - Home to You 11)한요한 - 람보르기니2018 12)Oasis -Wonderwall 13)Lana Del Rey - Born to Die 14)40 - 듣는 편지

박준상
일기 쓰는 기자 박준상입니다. https://litt.ly/junsang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