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여행에 관한 斷想(단상)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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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10  |  수정 2024-10-10 08:27  |  발행일 2024-10-10 제22면
[취재수첩] 여행에 관한 斷想(단상)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열풍이 뜨겁다. 국내외 정상급 요리사 100명이 출신, 배경, 경력을 내려놓고 오롯이 맛으로만 승부했다.

그런데 이번에 단연 스타덤에 오른 건 심사위원 안성재다. 올 상반기 국내 유일 미슐랭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의 오너셰프다. 쟁쟁한 요리사들도 그가 지닌 별 3개 앞에선 순한 양이 됐다. 썰린 당근 한 조각 크기, 청경채의 미세한 익힘까지 살피는 깐깐한 심사에도 모두가 수긍했다.

미슐랭가이드는 3스타를 '이 곳을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으로 설명한다. 8년 전 이탈리아 여행 중 '식당 자체로 방문할 가치가 있다'는 1스타 레스토랑에 갔었다. 낮은 가격대를 찾다 보니 이동경로에서 꽤 벗어난 식당을 택했다. 어렵게 맛본 1스타는 '그래도 가봤다'는 찝찝한 만족감만 남겼다. 별 개수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가난한 학생이 무리한 지출을 한 반작용일까. 경로와 일정을 조정한 보상심리나 일천한 미식 경험으로 섬세한 맛을 느끼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찝찝함의 근원을 최근 독일 뮌헨 출장길에서 재정립했다. 한식에 길든 한국인 입맛이 그 이유였다. 제 아무리 별을 땄어도 '양식'이니까 별로였던 건 아닐까. 그들이 수백, 수천 개의 스테이크·파스타 레스토랑 중 특출난 곳을 선별할 수 있어도 '굉장한 국밥집'은 한국인 아무개가 더 잘 찾을 테니 말이다. 미슐랭가이드는 1900년에 프랑스 여행자를 위한 현지식당 안내 책자로 시작했다. 124년 역사에서 서울 편이 나온 게 불과 7년 전이니 가정에 힘이 실린다.

뮌헨 출장 목적지는 '세계 3대 축제' 옥토버페스트 현장이었다. 햇수로 12년, 횟수로는 10회차에 접어든 대구 치맥페스티벌 발전 방향을 고민 중인 <사> 한국치맥산업협회 연수단과 동행했다.

광활한 부지엔 집채만 한 목조 건물 십수 채가 솟아 있었고, 현기증이 날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런데도 체계적 시스템과 매끄러운 운영, 도시 인프라와의 유기적 연계 등이 돋보였다.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축제였다.

하지만 "사람 구경이 8할"이라던 한 인사의 평가가 와닿았다. 배경과 관람객이 이국적이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콘텐츠로는 치맥페스티벌이 앞섰다. 특히 주요 관람객인 한국인 입맛에 꼭 맞다. 남은 건 하드웨어다. 다소 짧은 축제 기간과 좁아진 부지, 도심·교통 인프라와의 연결성 등이 관건이다. 그러면 치맥도 지역성과 세계성을 두루 갖춘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축제'가 될 수 있다.

최시웅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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