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틀리면 지워야 하니까

  •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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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18  |  수정 2024-10-20 16:52  |  발행일 2024-10-18 제30면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처음부터 너무 진한 잉크로 사랑을 쓴다면/ 지우기가 너무 너무 어렵잖아요"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매한 노래인데, 길거리를 걷다 어느 가게에서 흘러 나온 노래를 들었다. 귀엽기까지 한 노랫말이다. 틀릴 수 있으니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도록 연필로 쓰라고. 어찌 보면 철학적일지도.

예전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특별히 노랫말 이상의 의미를 담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신문사 직원으로서 살고 있는 지금은 저 말이 얼마나 와닿는지 모른다. 기자는 온라인부서에서 일한다. 기사 안에 오탈자나 틀린 내용이 있다면 바로바로 고칠 수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기자는 종이신문 지면을 가다듬는 편집기자였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오탈자나 잘못된 내용의 제목이 있어도 고칠 수 없다. 그런 날이면 시말서를 쓴다.

실수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시험을 볼 때 지문을 잘못 읽는다든지 답안지에 마킹을 잘못하는 실수가 한두 번이 아니라면, 그것도 실력이다. 기자도 그런 실수를 한두 번 한 게 아니니 그게 기자의 실력인 셈이다. 부족한 실력을 자책했다. 그날을 기억했고 실수 없이 1년을 보내고 혼자 그 날을 기념하기도 했다. 그 기억으로 물리적 형태를 가진, 신문으로 남는, 고쳐 쓸 수 없는 기록의 힘과 그 무거움을 되새긴다.

지난 3년간 기자는 '고쳐 쓰기'에 대해 실험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한동안 온라인 기사 수정 시스템 접속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모든 기자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수정 시스템을 개방했다. 반대도 있었다. 고쳐 쓰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생기고, 그 실수가 커져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 탓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관리하는 동안에 통제 밖의, 해결할 수 없었던 사고는 없었다.

최근 3주 동안 또 고쳐 쓰는 것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고칠 수 있음'은 어쩌면 '틀려도 됨'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실제로 온라인부서에서 일하면서 오탈자를 내는 일이 더 많아졌다. 글 자체를 자주, 많이 써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고칠 수 있으니 틀리더라도 우선 써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 확률이 높다. 해이해진 것일까. 어쩌면 효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처음부터 잉크로 적어 완성하면 진하고 말끔하기도 하다. 그럴 수 있었으면 그랬겠지. 그게 노랫말처럼 사랑이거나 다른 무엇이라도. 그러나 우리는 틀리면서, 넘어지면서 성장한다. 고칠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날이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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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는 기자 박준상입니다. https://litt.ly/jun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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