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직업 윤리의 가치

  •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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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13  |  수정 2024-11-13 07:09  |  발행일 2024-11-13 제26면
심심하면 터지는 금융사고

5년여간 횡령액 1800억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사회적인 손실이 너무나 커

직업 윤리의 가치 되새겨야

[동대구로에서] 직업 윤리의 가치
박종진 정경부 차장

지난달 말 NH농협은행 직원의 횡령 사실이 들통났다. 새내기 행원이 70대 고객의 예금 수억원을 빼돌린 것이다. 10억원 미만 금융사고는 공시를 하지 않아도 돼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사건이다.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올해만 열 차례가 넘는다. 횡령, 배임, 외부인에 의한 사기, 금융실명제 위반 등 죄목도 다양하다.

특히 지난 8월 드러난 농협은행 횡령 사건의 피해 금액은 110억원이 넘고, 연루된 직원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우리은행 직원이 대출신청서 등 서류를 위조해 100억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난 지 두 달도 안된 시점이다.

금융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금융권, 1금융권을 가리지 않는다. 2018년부터 지난 6월까지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액만 1천8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더욱이 지난 국정감사 때는 '손태승 사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재임 중 친인척 관련 법인 등에 350억원을 부적정 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민들은 몇백만원 대출도 쉽지 않는 마당에 절차도 무시하고 수백억원을 내줬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은행권은 당국으로부터 높은 강도의 규제를 받는다. 각종 업무 현황을 일일이 보고·공유하고 필요 시 승인도 받아야 한다.

그만큼 투명성이 보장돼야 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운용하려면 그만큼 절차와 방법이 공명해야 한다. 고객 역시 그런 믿음을 갖고 자신의 돈을 맡긴다. 은행들도 신뢰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은행권이 사외이사 확충, 지배구조·내부통제 개선 등을 통해 꾸준히 건전한 재무구조 확보와 투명성 제고에 나서는 이유다.

잇따른 금융사고에 은행 직원들도 볼멘 목소리를 낸다. 사고의 대부분은 시스템이 아닌 직원 개인 또는 극히 일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직원이 마음 먹고 시스템을 악용하거나 일부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우, 부정 행위를 뒤늦게 적발할 수밖에 없다는 토로다.

물론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하지만 꾸준한 자정 노력 없이 개인의 탓만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금융사고 소식에 이 같은 주장은 핑계로 들릴 뿐이다.

친분이 있는 일부 은행직원들은 금융사고 처벌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타인에게 금전적 피해를 주는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것. 실제 수십억원을 횡령해도 초범이면 징역 3~4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점점 옅어지는 직업윤리를 법 강화를 통해 보완할 수밖에 없다는 금융맨들의 자조 섞인 한탄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직업윤리의 가치가 희석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공공기관은 물론 법조계, 정치계, 언론계, 의료계 등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감만으로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 일보다 개인의 삶과 가족이 우선시되는 건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직업윤리의 가치가 이대로 추락하는 것을 방치할 순 없다.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직장과 직종은 물론 사회 공동체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면 손실이 너무나 크다.

박종진 정경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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