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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
어머니께서 이른 아침부터 최신 고향 소식을 알려오셨다. 이태 전에 마을로 이사 온 새댁이 둘째 아기를 낳았다고 했다. 올해 들어 동네의 첫 아기 탄생이자 면 내 첫 출생신고라고 자랑하셨다. 내년에는 그 새댁네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한다. 동네에 초등학생이 생기는 것이 한 10년은 된 것 같다며 떠들썩한 경사도 전하신다. 새댁은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지내게 하고 싶어 시골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될 때쯤 대도시로 나갈 것이라고 했단다.
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까지 어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고향마을은 대구 시내에서 3~40분 거리에 있다. 경부선 철도 역사(驛舍)도 있고 고속도로 나들목도 10분이면 닿는 곳이다. 필자가 다녔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전교생이 2천명은 족히 되었다. 그런데 현재는 한 학년 한 학급에 급당 20명 정도의 학생만 다니고 있다고 한다. 숫자가 보여주는 시골 마을의 현실이다.
동네에는 대들보가 내려앉은 집도 있고 한쪽이 푹 꺼져 기우뚱한 집도 있다. 윤기 잃은 기와지붕엔 지팡이를 만들었다는 명아주만 말라가고 있다. 푸석한 햇살은 강아지풀 무성한 마당을 찔렀다 물러난다. 정갈하던 화단에 피던 봉숭아며 맨드라미며 채송화들은 저희끼리 알아서 피고 진다. 서걱거리는 감나무 잎들만 바람을 따라 고요한 골목을 누빈다. 오가는 이 없어 짖는 법을 잊어버린 강아지만 꼬리를 흔들며 시간을 핥을 뿐이다.
동네 회관 앞에는 유모차 여러 대가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다. 휜 허리와 무릎이 아파 절룩거리는 다리가 의지하는 것들이다. 마음의 무게 중심은 앞으로 쏠리고 몸의 무게 중심은 뒤틀린 엉덩이에 둔 채 기우뚱거리는 세월을 실은 차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주차장은 지정석이다. 그래서 누가 나오지 않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엄마를 방문하거나 가끔 병원에 모시고 간 날에는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아지매, 오늘은 왜 안 나오능교?"
서로 관심과 안부와 안녕을 나눈다. 함께 배추전이나 찐 고구마에 동치미를 드신다. 자식들이 찾아오며 사 온 먹거리들을 나누기도 한다. 뜨끈한 밥에 김치만 있어도 같이 나누어 먹는 밥은 진수성찬에 버금간다. 아픈 자랑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게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사촌들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뜨끈하다는 마을 회관이다. 젊은이가 없는 동네에서 낡은 젊은이들이 모여 가족이 된다. 밥도 나누고 병까지 나누면서 서로에게 효자 노릇을 한다. 엄마를 곁에서 모실 수 없는 입장에서는 안심이 된다.
그래도 엄마로부터 동네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다가오는 새해에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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