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2) '센' 언니 펑크걸도 사랑한 컬러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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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07  |  수정 2025-03-07 08:31  |  발행일 2025-03-07 제15면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2) 센 언니 펑크걸도 사랑한 컬러
1966년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제작한 분홍 원피스를 입은 트위기. <출처: flashbak>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2) 센 언니 펑크걸도 사랑한 컬러
1958년 크리스찬 디올의 부드러운 이미지의 드레스. 전통적인 여성성으로 회귀를 강조했다. <출처: wwd>

60년대 심플·세련 모즈스타일 등장
대담한 형광빛 분홍 젊음·혁신 상징
70년대 펑크문화 영향 반항적 이미지
닭벼슬 모양 모호크헤어 컬러 채택
핑크, 시대 변천따라 의미 확장 변모
다양한 사회·문화적 스펙트럼 가져


무수히 많은 색들 중 분홍색은 가장 주목받는 색 중 하나이다. 1970~1980년대 색이 사람의 심리적·생리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로 미국·스위스 등의 연구자들이 교정시설의 내부와 수감복을 분홍으로 해 수감자들을 진정시키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물론 각 연구에 따라 효과의 유무는 차이가 있었고 논란의 여지가 있었으나 이런 연구에서 분홍색이 대표색으로 사용됐다는 것은 그 영향력을 대변하는 한 예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중반 사회적 변화와 상업적 전략으로 분홍색은 여성성과 관련된 색으로 주요하게 활용돼 성별 표현의 색으로 패션, 광고, 제품 디자인 등에 반영됐다. 1950년대 패션계에서 분홍색은 디올과 발렌시아가 등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컬렉션에 주요 색상으로 포함됐다. 크리스찬 디올은 전후 시기에 좁은 어깨, 날씬한 허리, 곡선적 실루엣을 강조한 낭만적인 뉴 룩(New look) 스타일을 발표하면서 부드러운 느낌과 산뜻한 채도의 분홍색을 사용해 전통적인 여성성으로 회귀를 강조했다.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2) 센 언니 펑크걸도 사랑한 컬러

1950년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고정화하고 전통적인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시대를 지나 1960~1970년대 청춘세대 문화의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분홍색의 적용 범위는 넓어지게 됐고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1960년대 이후 분홍색은 여성성, 반항, 정치적 메시지, 그리고 유행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패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특히 사회문화적, 심리적 성역할의 차이를 의미하는 젠더(gender) 규범을 넘어서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색으로 더욱 부각됐다. 당시 여성성의 색이었던 분홍색을 엘비스 프레슬리가 무대복 재킷으로 착용하고 분홍색 캐딜락 자동차를 소유한 것은 큰 이슈였다.

1960년대는 패션에서 대중문화와 하위문화가 융합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모더니스트(modernist)에서 유래된 모즈(Mod) 스타일이 등장하면서, 미니스커트의 창시자인 메리 퀀트(Mary Quant)와 같이 시대를 대변하는 디자이너들이 분홍색을 팝적인 감성으로 활용했다. 이 시기 분홍색은 과거의 부드럽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넘어 대담한 형광빛과 플라스틱 느낌으로 변화하며 젊음과 혁신을 상징했다. 또한 이 시기 미래주의 패션을 이끈 디자이너인 앙드레 꾸레주 역시 분홍을 우주시대 패션에 사용해 현대적·미래적이고 역동적인 여성미를 표현했다. 물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분홍 드레스에서처럼 분홍색은 여전히 여성성을 유지했으나 우아함과 현대적 세련됨이 더해진 이미지로 변모했다.

[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분홍색 (2) 센 언니 펑크걸도 사랑한 컬러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1970년대에는 펑크(Punk) 문화가 등장하면서, 분홍색은 반항의 색으로도 자리 잡았다. 영국 펑크 패션 탄생에 큰 역할을 한 디자이너 잔드라 로즈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전통적인 여성스러움을 재해석하며 '쇼킹 핑크(shocking pink)'를 도발적이고 강렬한 표현 도구로 활용했다. 밝은 형광빛의 분홍은 찢어진 티셔츠와 바지, 닭 벼슬처럼 세워진 모호크(Mohawk) 헤어스타일에 등장해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취향과 시대를 앞서나간 감성을 충돌적으로 결합해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색으로 재구성됐다. 이런 스타일은 당시 반항적 펑크스타일의 주요 요소로 펑크음악 팬들에게로 확산됐다. 꽃분홍, 마젠타로도 불리는 채도 높은 형광빛 분홍색은 펑크문화를 통해 검정 가죽 등 어두운 색과 결합돼 더욱 눈에 띄게 되면서 이율배반적으로 이전의 전통적인 '여성스러운' 이미지는 전복됐고, 사회적 규범을 조롱하는 슬로건의 티셔츠나 펑크락 앨범 표지 등에 사용돼 반항과 비판의 색으로 의미를 더하게 됐다.

이와 함께 음악·영화 등 다른 대중문화에서 분홍색을 통한 젠더의 경계를 넘어선 표현들이 발표됐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가수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보위는 무대와 앨범 표지에서 다양한 톤의 분홍색 의상을 착용하며 전통적인 젠더 규범에 도전하고 남녀 양성성을 수용한 이미지를 연출했고, 이것은 당시 앨범 'The Man Who Sold the World'의 표지에서 옅은 분홍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누워 있는 모습으로 다소 의도적으로 양성성의 이미지를 연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1978년 개봉 영화인 '그리스(Grease)'에서 여성 그룹인 '핑크 레이디스(Pink Ladies)'가 착용한 분홍빛 재킷은 그 색이 반항성과 여성적 정체성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색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18년 미국 패션스쿨인 FIT박물관에서 '핑크: 펑크, 예쁜, 파워풀한 컬러(Pink: The History of a Punk, Pretty, Powerful Color)'의 전시명으로 18세기에서 현재까지 80여벌의 핑크색 의상을 전시하면서 전시소개 서두에서 분홍색을 매우 강한 끌림과 반발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가장 분열적인 색으로 소개했다. 분홍색은 귀족과 평민, 여성성과 양성성, 부드러움과 권위, 반항과 저항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담아오면서 다른 어떤 색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각 시대를 대표하는 색으로 그 의미와 역할을 확장해왔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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