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클로즈 유어 아이즈’(빅토르 에리세 감독·2023·스페인 외)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 김은경
  • |
  • 입력 2025-03-28 09:43  |  발행일 2025-03-28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클로즈 유어 아이즈’(빅토르 에리세 감독·2023·스페인 외)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틸컷.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활동사진, 종합예술, 이야기, 꿈, 인생, 사랑, 낭만…. 영화란 무엇일까를 떠올리며 생각한 단어들이다. 단순한 킬링타임이라면 굳이 영화가 아니어도 될 것이다. 여기,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한 나지막한 대답이 있다.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답이다. 데뷔작 '벌집의 정령'(1973)으로 단숨에 거장의 반열에 오른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31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작가이자 감독인 미겔 가라이는 TV 탐사 프로그램의 제안을 받고 22년 전 실종된 배우를 찾아 나선다. 영화 촬영 중 홀연히 사라진 배우이자 친구인 훌리오의 흔적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는 중단됐고, 훌리오는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미겔은 훌리오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건 미완성 영화 '작별의 눈빛'이다. 극 중 극인데, 내용은 유대인 레비가 탐정 훌리오에게 잃어버린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영화 속 잃어버린 딸과 사고로 죽은 미겔의 아들 등은 모두 영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름 보관소, 영사실, 낡은 창고, 옛날 영화, 옛사랑 등등 영화는 낡고 사라진 것들로 가득하다. 마침내 만난 훌리오의 사라진 기억 역시 그렇다. 촬영 중 훌리오가 사라진 시기는 2012년이다. 2012년은 필름 영화가 디지털 영화보다 더 많이 만들어진 마지막 해다. '가슴 시린 시네마의 고별 무대'란 평은 그래서다.

“예술가 미할 바신스키는 왜 어느 날 갑자기, 자기 걸작이 영화가 아니라 인생이 되리라 판단했을까?" 미겔이 집필 중인 소설의 한 문장이다. 이 구절은 감독 자신의 고백으로 들린다. 어촌에서 고기잡이배를 타고,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노래하며 어울리는 모습은 아름답다. 영화를 찍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미겔이 부르는, 존 웨인의 영화 '리오부라보'에 나온 노래는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시골 사람들과 정겹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야누스 상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 몸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조각상이다. 평범한 나와 예술가 나, 젊은 날의 나와 늙고 주름진 나, 육체를 가진 나와 정신을 가진 나. 이 모든 것이 다 나다. 영화는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뭇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배우 훌리오는 기억을 잃어버린 초라한 늙은이로 발견된다. 미겔은 기억을 잃은 훌리오에게, 그가 출연했던 영화를 틀어준다. 젊은 날의 자기 모습 앞에서 훌리오의 눈은 또렷해지고, 뭔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을 감는다. 자기 딸도 알아보지 못하던 훌리오를 깨운 것(주치의 말대로라면 영혼)은 영화였다.

사라진 것들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눈을 감아야만 보일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클로즈 유어 아이즈'다. “올 한해 가장 아름다운 작품, 올해의 엔딩“이란 평을 들었던 영화, 인생과 영화를 향한 노 감독의 절절한 사랑 고백을 직접 체험하기 바란다.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