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촌유원지 드라이브 코스
잔인한 3월이 저물고 거짓말처럼 4월이 찾아왔다. 벚꽃이 도심 곳곳을 환하게 수놓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타들어간 대지와 사라진 생명들이 남긴 상흔이 깊이 배어 있다.
지난 3월 21일부터 30일까지 11개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경북에서만 여의도의 다섯 배에 달하는 1,490㏊(헥타르)의 과수원을 집어삼켰고, 기타 농작물 56㏊도 잿더미가 되었다.농민들의 피땀이 스며든 시설하우스 290동과 부대시설 958동이 무너졌으며, 2,639대의 농기계가 불타올랐다. 유통·가공시설 7곳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소실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비극은 30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되었다는 점이다. 동물들도 화마를 피해갈 수 없었다. 불길은 축사 71동을 집어삼켰고, 그 안에 있던 돼지 2만4천 마리와 닭 5만2천 마리가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재로 변한 삶터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생업의 터전마저 잃은 이재민들의 절망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그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4월이 오자 전국 곳곳에서 봄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일부 행사는 산불 피해로 취소되거나 축소되었지만, 도심 속 벚꽃 명소들은 어김없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대구의 앞산빨래터, 동촌유원지 일대 금호강 수변공원, 경북대학교 산격캠퍼스, 침산공원, 꽃보라 동산, 대구 스타디움 가는 길 등지는 이미 꽃구경을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특히 동촌유원지는 벚꽃 터널길로도 유명해 도보로, 자전거로, 드라이브로 즐길 수 있으며, 해가 지면 또 다른 매력의 야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화려한 벚꽃 아래에서도, 그 불길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의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벚꽃은 매년 어김없이 피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질 것이다.
벚꽃이 계엄과 탄핵의 격랑 속에서도 국민들을 위로하듯,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검은 재를 헤집으며 살아갈 희망을 찾고 있는 이재민들의 마음속에는 차마 피어날 수 없는 봄이 있다. 이들에게도 언젠가 다시 벚꽃이 피어나길, 다시 따뜻한 봄날이 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한유정
까마기자 한유정기자입니다.영상 뉴스를 주로 제작합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