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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학씨는 외형적으로 강한 리더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어장 선장이자 마을 어민 사회의 중심인 그는 공동체 내에서 일정한 권위를 행사한다. 그러나 그의 권위는 존경이 아닌 두려움 위에 세워져 있다. 단정적인 말투와 폭력적인 언행, 일방적인 통제로 점철된 그의 태도는 가족을 붕괴시키고, 공동체를 균열로 몰아넣는다. 결국,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안에서 학씨의 파괴성은 극대화된다. 그는 아내 영란과 자녀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며, 감정적 교류 없이 권위만을 내세운다. 그 결과, 아들 부오성은 그를 회피하며 집을 떠나고, 딸 현숙은 가부장적 질서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는다. 여리기만 했던 아내 영란마저 이혼을 결심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과도한 권위주의와 공격성이 내면의 열등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학씨의 언행은 곧 자존감 결핍과 자기 불안의 반영인 것이다. 그는 변화하는 사회 질서 속에서 점차 무력해지는 남성 중심의 권위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채,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주변을 억압한다. 그러나 이 억압이야말로 그를 고립시키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덫이 된다.
학씨는 가족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 내에서도 점차 외면받는다. 처음에는 어장 선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태도는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결국 성추문과 계장 선거 낙선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지도자가 아닌 '위협적 존재'로 인식된다. 공동체 내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모습은 구시대적 권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권력의 아이러니와도 맞닿아 있다. 푸코는 강압적인 권력일수록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내부의 저항을 자초한다고 보았다. 학씨의 권위는 강제성에 기대어 유지되지만, 그것이 지속될수록 더 많은 반발과 균열을 낳는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사자성어는 '자신이 만든 밧줄에 스스로 얽매인다'는 뜻이다. 학씨는 권위와 통제를 고집함으로써, 정작 자신이 갈망했던 사랑과 존경, 소속감으로부터 가장 멀어진 인물이 된다. 그가 만든 권력의 틀은 방어막이 아닌 덫이었고, 결국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다.
하지만, 혼자 남은 빈집에서 벽에 걸린 아내의 사진을 보며 "나도 당신 옆에서 추워 얼어 죽는 줄 알았다"라고 소리 지르는 소심한 복수를 하거나, 외로운 자신과 대비되는 관식의 모습을 보며 "근데 그게 마누라 덕이 아니었네. 네가 다르네. 네가 나랑 달랐네"라며 뒤늦게 깨닫는 학씨의 쓸쓸한 모습에서 우리는 묘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존중 없는 권위, 공감 없는 통제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우리가 만든 권력의 구조 속에서 인간은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파국은 대개 외부가 아닌 스스로의 손에서 비롯된다.
2025년 4월4일 11시22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 같이 지켜보았다.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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