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전경. 영남일보DB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한국형 원전 수출이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6년 만이며 특히 유럽이라는 까다로운 원전 규제 시장에 첫 진입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기술, 외교, 산업 전반의 전략적 성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2년간 이어진 지식재산권 분쟁을 '공동 진출'이라는 해법으로 마무리한 점은 한·미 기술외교의 전환점으로 꼽힌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이 자사 기술에 기반한다며 한국의 독자수출을 견제해왔으나 결국 한수원과 협상 끝에 체코 프로젝트에서 '팀 코러스(Team Korea+US)' 공동모델로 참여하게 됐다. 이는 향후 미국 및 동유럽 원전시장에 한국 기술이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사업에는 한전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 민관합동 컨소시엄이 참여하고 있어 단일 기업의 수출을 넘어 '한국형 원전 생태계' 전체의 해외 진출이라는 구조적 의미도 크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도 체코 내 제도적 장벽이 존재했다. 프랑스 EDF는 입찰 절차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체코 반독점사무소(UOHS)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지난 4월24일 UOHS가 이를 기각하면서 모든 법적 장벽이 제거됐다. 이에 따라 계약서 문안 정리, 의전 조율만 남은 상태에서 한수원은 오는 7일 최종 서명을 앞두게 됐다.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원전 외에도 테멜린 단지에 2기 원전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번 본계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26조+α' 규모의 추가 수주도 기대되고 있다. 한수원이 제출한 일괄제안서에 따르면 두코바니와 테멜린을 합친 4기 수주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최대 5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확장될 수 있다.
원전은 단순한 발전설비가 아니라 수십년간 기술·운영·안전·연료공급까지 연계되는 복합산업이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는 그 출발점에 불과하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수주 자체보다 한·미 협력 모델을 공식화하고 유럽 시장에서의 첫 실질적 레퍼런스를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수주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에 따른 원전 수요가 재부상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 전력수요가 급등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데이터센터 기반 산업이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에서 안정적이고 대규모 전력공급이 가능한 원전은 재조명되고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체코 수주를 계기로 루마니아, 폴란드, 사우디 등 후속 수출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기술과 외교, 산업협력의 총체적 성과"라며 “팀코리아가 세계 원전시장에서 더욱 확실한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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