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재일 논설실장 |
2025년 21대 대통령 선거는 기괴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 틀림없다. 현직 대통령이 친위쿠데타 계엄을 선포하고, 실패한 뒤 끌려 내려와 치러지는 사실상 보궐선거다. 선거 과정도 기괴하다. 당 후보를 뽑아놓고도 새벽 3시에 새 후보를 모집한다는 희대의 공고문을 국민은 계엄 포고령처럼 목도했다. 선거 이슈를 놓고 반대 쪽에서는 '내란 잔당 소탕'이라는 어마무시한 얘기를 꺼낸다.
기괴한 선거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도 언뜻언뜻 보인다. 예전에는 1천 달러 국민소득(박정희), 외환위기 극복(김대중), 국토균형발전(노무현), 녹색경제와 777성장(이명박), 경제민주화(박근혜)라도 있었지만, 그런 담론은 실종됐다. 있기는 한데 모두가 무덤덤해졌다. 대표적인 게 '세종시 수도이전론'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세부적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히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 이전을 공언했다. 충청 표심을 겨냥한 '세종시대' 공약이다. 헌법 개정이 수반될, 국운(國運)를 좌우할 사안인데도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국토균형발전은 수도권 초과밀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명분을 갖고 있다. 수도 이전은 그래서 등장했다. 박정희는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한 서울 이전을 밝힌 바 있고, 노무현은 선거에서 재미봤다고 스스로 자평한 '신(新) 행정수도론'을 주창했다. 결국 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총리실을 비롯한 대부분 중앙부처가 세종시로 이전됐다. 도시계획으로 성공했느냐는 논쟁에 휘말렸던 세종시는 이제 더 이상 허허벌판의 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서울과 직통의 고속도로와 KTX가 깔렸다. 아파트 가격에서 서울 강남 다음 가는 핫한 지역이 됐다. 충청권의 정치적 모호성은 선거 때마다 공약에 공약을 증폭시켜 세종시와 충청 주변 일대에 새로운 스카이 라인과 도시공간을 구축했다.
대구란 도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세종시 수도론은 불리하다. 대구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울-평양 다음의 한반도 3대 도시였으나, 6·25전쟁을 거친 뒤 부산에 이은 남한의 3대 도시가 됐다. 언제부터인지 인천에 경제규모와 인구마저 추월당해 4위다. 이제 세종-대전이 연대한 광역 메트로폴리탄이 구축된다면 다시 뒤로 밀려날 것이다.
세종시 수도론은 그래서 불편하다. 솔직히 말해 수십년 외쳐온 국토균형발전론이 충청권 발전론으로 귀결되는 이상한 상황전개가 마뜩지 않다. 정부는 세종으로 행정수도를 옮겼으니 도로·철도망이 필요하다고 예산을 배정했다. 향후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까지 옮긴다면 새로운 수도의 도시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또 예산이 배정될 것이다. 무엇보다 멍청한 지점은 대선이 거듭될수록 이를 당연시 바라보는 비수도권의 수수방관적 태도다. 사실 이번 대선에서 대구 부산에 뭘 주겠다는 현실적 공약이 있기는 한가.
시기하는 것이 아니다. 제2서울 세종시는 형평에 맞는가의 질문이다. 대한민국 인구는 줄고 있다. 도시, 특히 지방도시는 쇠락한다. 도시는 나름의 유지(維持)·보수(補修) 능력을 갖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문화와 고유 역사를 갖춘 전통의 도시들이 성장할, 질 높은 계획을 말한다. 대구 부산 광주 같은 지방 대도시들은 서울 초집중에 질식해 왔다. 서울 하나도 버거운데 제2서울까지 나서 전통의 지방도시들을 옥죈다면 곤란하다. 세종 수도론은 그래서 탐탁지 않다. 냉정한 평가속에 국토 설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세종시는 절제된 행정타운으로 그쳐야 한다. 나랏돈을 그만 퍼부었으면 한다. 그게 균형발전이다.
박재일 논설실장

박재일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