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울릉군 도동리에 자리한 이곳은 울릉군이 옛 울릉군수 관사로 사용하던 곳을 2015년 7월 '울릉도에서 만나는 박정희 1962' 전시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962년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의 자료와 스토리를 담아 전시하고 있다.
울릉도 관문 도동 시내에 위치한 박정희기념관(옛 울릉군수 관사)에 새겨진 "울릉도를 이렇게 내팽개쳐 둘 거라면 차라리 일본에 팔아버리지요"라는 문구는 한국 최동단 섬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순간을 상기시킨다. 이 울릉도 출신 공무원의 직설적인 발언은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관심을 끌어 섬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1962년 10월11일, 박정희 의장은 군함을 타고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그는 옛 울릉군수 관사에서 박창규 울릉군수, 이일선 울릉도의원 병원장, 민기식 1군 사령관, 이맹기 해군참모총장 등과 저녁식사를 나누고 하룻밤을 묵었다. 지역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저녁 식탁에는 울릉도 주민들이 직접 잡은 전복·오징어 등 해산물과 명이나물 등 울릉도 산채, 그리고 소고기 요리가 올랐다. 이 만찬 자리에서 박 의장은 울릉군수와 주민들로부터 울릉군의 현황, 독도경비대의 열악한 환경, 울릉도 어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주의깊게 청취했다.
한국전쟁 이후 울릉도는 사실상 야생 그 자체였다. 험준한 산과 울창한 숲,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지형에 제대로 된 도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개설한 작은 왕래길만 있었으나, 겨울철 폭설로 길이 막혀 이동이 불가능했다. 울릉도에 최초의 도로가 건설된 것은 1918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폭 1~2m, 총길이 약 59km의 도로가 신설됐으나, 이는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정도의 협소한 길이었다. 1940년 보수공사가 이뤄졌으나, 1959년 태풍 사라호로 인해 형체조차 사라졌다. 방파제나 접안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군청 소재지인 도동항조차 초라한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박 의장의 울릉도 방문 직후, 그의 지시로 울릉도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됐다. 이 계획은 1963년 3월8일 각의에서 의결돼 정부 지원 하에 본격적인 울릉도 개발이 시작됐다. 계획에는 정기 여객선 취항, 방파제와 접안시설 신설, 울릉도 일주도로 개설, 수력발전소 착공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어업전진기지인 저동항과 울릉도의 관문 도동항을 필두로 7곳의 어항신설 공사가 시작됐다. 수산청, 항만청, 경북도, 울릉군 등 4개 관청에서 총 187억7천650만원을 투입해 울릉도의 면모를 일신하는 대규모 건설사업이 추진됐다.
울릉도 주민들은 1963년 9월 박 의장의 방문과 개발사업 추진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울릉군의 군목인 후박나무 숲이 우거진 저동항 인근 관해정에 방문기념비를 세웠다. 박 의장이 하룻밤을 묵었던 일본식 가옥 형태의 옛 울릉군수 관사는 2015년 7월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대지 950㎡, 건축면적 152㎡ 규모다. 1962년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의 자료와 스토리를 담아 전시하고 있다. 시찰 당시 영상과 글씨도 함께 전시해 당시 박 의장의 다양한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또 현재 울릉도가 발전한 모습들도 전시돼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정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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