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까지 병산서원에 설치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 방문 기념식수비<독자제공>

병산서원에 설치됐던 윤석열 전 대통령 방문 기념식수 앞 비석이 사라진 모습<독자제공>
2023년 10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병산서원에 무단으로 소나무를 심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행위는 관련 법령상 명백한 무허가로, 유산 관리 주체의 절차적 미비와 더불어 대통령실의 책임 회피가 복합적으로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소나무 앞에 설치됐던 기념 비석이 최근 아무런 기록이나 고지 없이 사라진 사실까지 밝혀지며, 세계유산 관리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안동시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 2023년 10월, 병산서원을 찾아 유림 간담회를 가진 뒤 소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다. 식수는 사전 허가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문화재 보호 관련 규정엔 국가지정문화재 구역 내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관할 지자체의 허가 신청이 선행돼야 하며,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국가유산청의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실은 안동시에 사전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동시 관계자는 "식수 당일 대통령실로부터 갑작스럽게 식재 의사가 전달됐다"며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가 임의로 국가유산청에 허가를 요청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절차상 무허가임을 인지했지만, 현직 대통령의 행위를 현장에서 제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기념식수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식수된 소나무 앞에는 이후 "방문 기념식수 대통령 윤석열"이란 문구가 새겨진 화강암 비석이 세워졌다. 이 비석을 누가, 언제 설치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병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공간으로, 그 안의 모든 구조물은 일정한 관리와 기록하에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1~2주 사이 비석이 돌연 철거됐다. 사실상 공공유산 공간에서 '무단 설치–무단 철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안동시 관계자는 "누가 설치했고, 왜 철거했는지는 현재로선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의 병산서원 방문과 기념식수는 계엄령 관련 논란과 맞물려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던 시점과 겹친다. 그로 인해 비석 설치 이후 수개월간, 해당 기념물을 두고 관광객과 시민들의 항의성 행동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병산서원에 대한 무단 행위가 단순한 절차적 하자에 그치지 않고, 유네스코 등재 가치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세계문화유산은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인류의 공적 자산"이라며 "공적인 공간을 사적 명분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은 문화유산 보호 시스템의 허술함과 함께 최고 권력자의 행위에 대한 행정기관의 무기력을 동시에 드러낸 단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안동시도, 국가유산청도 사후적으로 무허가임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당시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향후 비슷한 사안에 대한 재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이유로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이 사실상 무력화된 점은 정치적 논란을 넘어 법적 형평성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대표적 서원으로 퇴계 이황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한 장소로 201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 상징성과 역사성을 고려할 때, 이번 무단 식수 및 비석 설치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세계유산 체계 전반에 대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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