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윤 논설위원
이재명 정부의 출발은 비교적 성공적이다. 두 달 남짓 국정지지율이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를 찍지 않은 중도층, 심지어 보수층의 시선마저 많이 부드러워졌음을 의미한다. 이유가 뭘까. 윤희석(국민의힘 전 대변인)의 평이 흥미롭다. " 완급조절에 성공한 듯하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이재명 대통령이면 요건 요렇게 할 것 같은데 그런데 그걸 안 하고, 요거는 안 할 것 같은데 하고, 이런 게 있다. 그러면 양쪽에서 다 지지받게 된다. 탄탄한 지지층에 더해 원래 지지세가 약하거나 지지 안 했던 분들도 '어 좋은데~'라고 생각할 여지가 많다."
'이재명이면 요건 요렇게 할 것 같은데 안 하고, 요거는 안 할 것 같은데 했으면 하는' 게 아직 남아 있다. 그중 몇 가지를 보자. 친보수적 정책들이 많다. 지지층의 반발을 부르겠지만, 구존동이(求存同異)의 태도야말로 진짜 실용주의 아니겠는가.
①'주 48시간제' 추진은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의 노동생산성은 OECD 최하위권이다. 지금의 주 52시간제조차 일부 산업에는 맞지 않는 옷이다. 오히려 노동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 유럽은 근로시간을 늘리고 공휴일을 줄이고 있다. TSMC의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은 24시간 3교대, 필요에 따라 24시간 대기한다. 무엇으로 이들과 경쟁하려는가. 구글 전 CEO가 구글이 AI 주도권을 내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워라벨 챙기느라 망했다. 재택이나 칼퇴가 기술을 죽였다." ②'빚 탕감'도 마찬가지다. 지난 20년간 6번이나 비슷한 정책이 있었지만, 채무 탕감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냈는지, 패자부활은 진짜 이뤄졌는지 제대로 된 검증도, 입증할만한 데이터도 없다. 성실한 채무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다시 채무를 지는 악순환만 반복됐다. 수혜 대상자인 소기업·소상공인조차 회의적이다. 이들의 59.1%가 채무조정에 '반대'했다.(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 현행 개인회생 제도를 개선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③진보진영의 단골메뉴 '차별금지법 제정'도 신중해야 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막자는 데 반대할 이유 없다. 다만 이 법안에 동성혼과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 포함된 게 문제다. 동성혼, 동성애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게 자명하다. 동성애자를 품어주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과 동성혼·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수용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다만 동성애·동성혼을 배제한 차별금지법 논의는 마다할 이유 없다. ④'전작권 전환'은 대통령 공약이지만 성급한 추진은 득보다 실이 많다. 미군이 과연 한국군의 지휘를 받으려하겠는가. 전작권 환수가 이뤄지면 주한미군의 감축 혹은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타국에 지휘권을 넘기지 않는다는 '퍼싱 원칙(Pershing's Own)'에 충실하다. 핵전쟁을 포함한 남북 전면전에서 우리가 자신 있을 때, 동북아 안보 환경이 안정됐을 때, 우리가 최소한의 핵전력을 갖춘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⑤민주당은 '국민의힘 정당 해산'을 벼르고 있다. 국회 의결로 정당해산 안건을 국무회의에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이 대통령이 명확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의 반성과 쇄신은 지당한 일이지만, 그 당의 운명은 국민의 심판에 맡기는 게 순리다. 상대를 멸절시키겠다는 것은 실용주의가 아니다. 제1야당과의 협치 없이 어떻게 민생을 살릴 수 있겠는가.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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