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구읍성 밖 사방 수㎞ 걸쳐 수십基씩 줄지어 ‘장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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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0-12   |  발행일 2012-10-12 제34면   |  수정 2012-10-12
■ 보존 실태
◇수성못 서편 8基
안내문·관리 등 엉망
20121012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화장사 담벼락 사이에 끼어 있는 고인돌. 이승과 저승에 걸쳐 있는 듯하다.

◆수성구 상동 501번지, 수성못 서편 고인돌무덤

수성못 서편 수성랜드 부근에 있는 고인돌무덤은 신천 주변의 대표적인 지석묘군이다. 대구시기념물 제12호로 지하에 30여기의 다양한 분묘와 유물이 확인됐다.

1998~99년 대구박물관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발견한 곳이다. 대구시가 펴낸 ‘대구의 향기’에 따르면 수성들판이 택지로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십기의 고인돌이 남북 1㎞에 걸쳐 줄지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4기의 고인돌은 대구문화예술회관에 옮겨져 있다.

수성못 서편에는 현재 8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이 밀집해 있으나 관리상태가 엉망이다. 깨진 돌이나 유리조각이 고인돌 주변에 널브러져 있고, 잡초도 무성하다. 허술한 안내판만 없으면 큰 바윗덩어리들을 나대지 한 귀퉁이에 처박아 놓은 듯하다. 기념물을 뜻하는 영어 ‘monument’도 스펠링이 틀려있다. 발굴당시 사진을 코팅해 안내판 뒤에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대구시지정기념물이지만 도로가에는 간판도 없고 차도 들어갈 수 없다. 수성구청 홈페이지에는 상동 고인돌무덤이 기념물로 등재돼 있지 않다.

함순섭 대구박물관장은 “상동 지석묘군을 둘러본 외지인들로부터 ‘대구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더러 항의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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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 상동 72번지 정화우방팔레스 아파트 서편에 있는 고인돌 소공원. 발굴현장을 유리로 덮어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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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서편 수성랜드 부근에 있는 고인돌무덤은 대구시지정문화재이지만 관리상태가 엉망이다. 대구 신천 주변의 대표적인 지석묘군이라고 안내판(원점선)에 쓰여 있지만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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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야외박물관으로 옮겨진 대구에서 최초로 발굴한 남구 대봉동 고인돌(후에 이천동 고인돌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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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화장사 경내 칠성각 옆에 있는 고인돌. 높이 3m, 길이 5m로 대구에서 발견된 고인돌 중 가장 크다. 자세히 보면 동심원 무늬(사진왼쪽 원점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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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상화로 5길 33번지, 진천동 파크빌라 뒤편에 있는 입석제단은 대구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으로 사적 제411호다. 선돌을 중심으로 공동 제의(祭儀)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 보존 실태

◇수성못 서편 8基
안내문·관리 등 엉망
외지인 “수준 한심”

◇정화우방팔레스 6基
발굴현장 유리로 보존
소공원 조성해 쉼터로

◇시지에도 있다
사월동 10·매호동10基
시지정기념물 등재를

◇냉천리 10여基
일부 말끔히 정비돼
거석문화공원 추진

◇화장사·교도소 8基
동심원 3개 새겨진 것
토담에 낀 것 등 눈길

◇진천동 파크빌라 1基
2m 입석 국가문화재로
공동祭儀 학술가치 커

◇경북대 야외박물관
대구서 최초로 발굴된
대봉동 고인돌 전시

◇대구역 7基
경상감사 일곱 아들
이름 새긴 후 기도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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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 상동 72번지 정화우방팔레스 아파트 서편 고인돌무덤

이곳에 있는 고인돌유적은 옛 정화여중·고 자리에 있던 것들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101동과 102동 사이 1층 주차장 서편으로 옮겨진 것이다. 고인돌 6기가 돌널·돌덧널무덤 사이에 661㎡(200평) 정도 소공원에 분포돼 있다. 대구시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안내판의 내용이 상동 고인돌무덤과 달리 꼼꼼하게 기록돼 있고, 발굴현장도 두꺼운 유리판 속에 잘 보관돼 있다. 대단지 아파트 귀퉁이에 고인돌공원이 있어 생경한 느낌이 드나 주민들은 벤치가 있는 공원을 만족해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가끔 이곳에 와서 그림도 그리고 고인돌에 앉아 책도 읽는다고 했다. 고대인의 무덤이 주민쉼터로 잘 조성돼 현대인과 조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수성구 사월동 욱수천로 133번지(시지2차 사월보성타운내) 고인돌무덤

수성구 고산·시지·매호·사월동 일대는 욱수천과 매호천, 남천 양안에 고인돌무덤이 군집하고 있다. 이 중 욱수천에 인접한 사월동에는 모두 10기의 고인돌이 남아있다. 현재 사월보성타운내 아파트정원 담장 옆에 너비 1~2.5m 내외의 고인돌 4기가 남아있다. 대구시기념물 제9호로 과거 ‘칠성바위’라 불린 것으로 보아 7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성구 매호동 843-3·844·836·809번지 고인돌무덤

대구~경산 달구벌대로 국도변 매호동 일대 나대지에 고인돌무덤 6기가 분포하고 있고 809번지 밭 일대에 4기가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서성들이라 불리는 평야였으나 지금은 두레타운, 하나타운 등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주택으로 바뀌었다.

92년 개발에 앞서 영남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했다. 이정웅 달구벌 얼 찾는 모임 대표는 “대구시가 매호동 주변에 산재한 고인돌을 시지정기념물로 등재해 보존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387-1번지(가창제일교회 뒤편) 고인돌무덤

고고학계에서는 가창제일교회 뒤편 지석묘군이 기원전 1000~300년 청동기시대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 신천 상류 냉천리에는 수십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8기(대구시지정기념물 제14호)가 교회 뒤편에 잘 보존돼 있다. 대부분 가름돌을 괸 바둑판식과 덮개돌만 있는 개석식이다. 5기는 소공원 안에 있고 나머지 3기는 개인소유지에 있다. 이곳 말고도 교회 안에 3기가 더 있다.

이영모 가창제일교회 목사는 “교회 인근 김삿갓 식당과 갑오자동차정비공장 입구에도 고인돌로 보이는 거석이 2~3개 더 있다”면서 “대구시가 교회 부지를 매입해 공원을 조성한다면 매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기오환 갑오자동차정비공장 대표는 “수년전 공장을 지으면서 성토를 하다 거대한 바위를 발견했는데, 모양이 범상치 않아 공장 입구에 조경석으로 가져다놓았다”고 밝혔다. 이곳은 최근 말끔히 정비돼 대구의 대표적인 선사유적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김제근 달성군청 학예연구사는 “최근 2~3년 달성군이 이곳을 주목해 고인돌공원으로 조성했다”면서 “주변 흩어져 있는 지석묘군에 대한 학술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발굴이 끝나면 장기적으로 이곳 소공원에 주변 고인돌을 옮겨 거석문화유적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515-1번지, 화장사(華藏寺)경내 및 대구교도소 담벼락 고인돌무덤

이곳은 화원읍의 중심지다. 옛날 이 일대 농토에는 수많은 고인돌무덤이 분포했지만, 현재 8기(대구시기념물 제13호)만이 화장사 경내와 대구교도소 담벼락을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열을 맞춰 있다. 3기는 화장사 경내에, 나머지 4기는 화장사 바깥의 대구교도소 외곽에 위치하고 있으며, 1기는 화장사 토담에 끼어 있다.

일경 화장사 주지스님은 “보원거사(속명·김영옥)라는 분이 칠성바위가 있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현몽을 꾸고 1925년 이곳에 사찰을 창건했다”며 “화장(華藏)이란 연화장(蓮華藏)과 같은 말로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또는 연꽃 속에 담겨 있는 세계라는 말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현재 대구교도소 담벼락에는 보원거사의 사리탑이 있다.

고인돌무덤은 일렬로 군집해 있다. 주민들은 예로부터 이곳 거석을 칠성바위라 불렀다. 화장사 경내는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 확장이 설계돼 있었으나 고인돌이 기념물로 지정됨에 따라 도로가 나지 않았다.

칠성각 바로 옆에 있는 고인돌은 탐방팀이 대구에서 목격한 고인돌 중 규모가 가장 컸다. 높이가 약 3m에 이르며 길이도 5m가 넘는다. 바위에는 흐릿하나마 3개의 동심원마크도 보인다.

일경스님은 “대구보다 울산, 부산, 전남 등지에서 온 학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지정문화재에는 탁본이 금지돼 있으나 동심원마크에 탁본을 많이 해서 그런지 표면이 희뿌옇다. 화장사 담벼락에 끼어있는 고인돌도 특이한 모습이다.

정만진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사찰과 교도소, 그 사이 담벼락에 걸쳐있는 고인돌이 이승과 저승, 자유와 구속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화장사 극락보전 옆 고인돌에는 다산을 기원하거나 별자리를 표시한 성혈(性穴 또는 星穴)이 자국이 뚜렷하다. 2016년 대구교도소가 달성군 하빈면으로 이전하면 이곳에 작은 고인돌공원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제근 달성군청 학예연구사는 “화장사 경내는 사찰부지라 환경정비가 미비하다”면서 “이곳 고인돌무덤은 학술가치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달서구 상화로5길 33번지, 진천동 파크빌라 뒤편 입석제단

이곳은 대구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지다. 97년 경북대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성혈이 있는 높이 2m, 폭1m가량의 입석과 20여m에 이르는 장방형 석축이 발견됐다. 청동기시대 다양한 토기와 석기류가 출토돼 당시 고대인이 선돌을 중심으로 공동으로 제의(祭儀)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제의유적은 국내에서 처음 알려진 것으로 보고됐으며, 학술적 가치가 있어 이듬해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11호)로 지정됐다. 달서구청은 4.072㎡의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한 후 2000년 주민에게 개방했다.

사적지에는 관람객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인근에 모형 입석과 무덤이 있어 자세히 관람할 수 있고, 탁본도 가능하다. 입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고인돌은 보이지 않는다. 이밖에도 달서구에는 아래와 같이 상당한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월암로65번지(월암동) 입석 △조암로22길 89번지(월암동) 입석 △진천동 713-14번지 고인돌무덤 △상인로9길25 상인동 입석 △월성동 1257-3, 1242번지 고인돌무덤 △진천동 700번지 대구성로원 남쪽 고인돌무덤 △진천동 653·658번지 월배유치원 부근 고인돌무덤

◆북구 경북대 야외박물관

이곳에서는 대구에서 최초로 발굴한 남구 ‘대봉동 고인돌(후에 이천동 고인돌로 바뀜)’을 관람할 수 있다. 일제가 대구에서 최초로 발굴조사를 했던 곳으로 도시개발로 야외박물관으로 옮겨진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받침돌 4개가 기둥처럼 덮개돌을 괴고 있다. 원래 자리에는 대형 거석을 중심으로 ‘卍’자형으로 5기의 돌무덤 방이 매설돼 있었다고 한다.

◆북구 칠성동2가, 지하철대구역 4번 출구 칠성바위

칠성동이란 명칭이 칠성바위에서 유래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7개의 고인돌이 지하철 대구역 4번 출구 인근 모퉁이에 있다. 이 바위는 원래 대구역 서편 칠성동에 있었으나, 대구시민회관 건립을 2년 앞둔 71년 발굴조사가 끝난 뒤 중구 태평로 2가 대구시민회관 남쪽 화단으로 옮겼다가 98년 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새로 조성된 칠성동 소재 ‘지하철대구역광장’으로 이전했다. 칠성바위는 모두 덮개돌만 있는 개석식이다.

칠성바위는 조선 정조 때 경상감사 이태영이 꿈에 북두칠성이 북문 밖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7아들의 이름을 이 바위들에 새겨 복을 빌었던 데서 유래한다. 이에 백성들이 칠성바위로 부르면서 아들을 얻기 위한 기도처로 이용됐다.

바위에는 한자로 희갑, 희평, 희두, 희장, 희승 등 5명의 아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칠성바위는 광장 귀퉁이 좁은 공간에 있어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협찬:(주)지오씨엔아이

글·사진=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고인돌= 돌+인(人). 거꾸로 읽으면 ‘인돌’이다. 앞에다 ‘고(古)’자를 넣으면 고인돌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인돌은 켈트어로 돌멘(dolmen)이다. 고인돌을 ‘고대인의 돌’이라고 해석하고 싶지만, 실상 ‘dol’은 탁자고 ‘men’은 돌이란 뜻이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으면서 언어가 혼란하게 됐다지만, 우리말 고인돌과 북아일랜드 켈트어의 돌멘은 비슷한 어감이 든다. 하지만 고인돌이란 뜻은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이나 ‘고임돌’에서 유래됐다는 게 정설이다. 칠성바위 신앙에서 보듯 고대인은 큰 돌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갓바위를 찾는 현대인에게도 큰 돌은 여전히 숭배의 대상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양식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석묘는 일본식 한자로, 북한에서는 그냥 ‘고인돌무덤’이라고 부른다. 무관심 속에 3천여년간 방치됐던 선사시대의 거석(巨石)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00여년도 채 안된다. 고인돌은 동북아시아, 지중해 연안, 동남아시아, 인도, 유럽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지구상에 남아있는 고인돌 6만기 중 4만여기가 한반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 중 2만5천여기가 남한에 있고 나머지가 북한에 있다. 특히 서·남해 연안과 중·소하천 지역에 밀집해 있다. 2000년 고창, 화순, 강화지역의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 997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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