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에 밀려 멸실되거나 매몰…3000基에서 100基로 줄어

  • 입력 2012-10-12   |  발행일 2012-10-12 제35면   |  수정 2012-10-12
40년 선사유적 발굴 외길, 윤용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대구시에 보내는 ‘고인돌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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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당시 대구지역에 있던 지석묘군 사진. 고인돌 주변이 모두 경작지다. 뒤에 보이는 산은 앞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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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나 도시의 형성 이전에는 그 지역에 산재하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과 더불어 그곳 사람들과 주변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작용하면서 성장, 발전한다.

대구 역시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역사적, 문화적 유산과 주변의 자연환경이 어울리는 데서 발전해왔다. 성읍국가였던 달구벌과 율령국가의 지방행정 중심지인 대구가 지금의 근대화 된 거대한 대구로 성장했다.

따라서 문화유적의 존재는 그 도시의 역사와 품격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반대로 문화유산의 말살은 그곳의 역사와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대구인구가 5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할 무렵은 1907년 대구읍성을 헐어버렸던 때부터 불과 10년 사이다. 이 무렵 읍성 북문을 나서면 침산동~신천까지는 허허벌판이었고, 바로 성문 앞에 있는 칠성지석묘를 볼 수 있었다. 이 거대한 바위들은 대구를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 동문을 나서면 역시 동인동~신천까지 넓은 평야가 전개됐고, 성문 밖 300m 거리에 동문동지석묘군(현 대구시청사 서편)과 공평동지석묘군(옛 법원자리)이 흩어져 있었다.

대구가 시가지를 형성하기 이전까지 이곳 거석들은 들판 위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읍성의 남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진산(鎭山)으로 가려져 있으나 구릉 정상에는 거북바위라고 전하는 지석묘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 경북대사대부설고에서 다시 10리가 넘는 들판에 지석묘가 무리를 지어 일직선상에 배열돼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도시의 주거지가 확장되면서 이 지역의 지석묘는 빌딩에 가려 거대한 암석의 위용을 잃게 됐다.

선사시대 움막에서 살았던 당시의 들판에서 10리가 넘는 거리에 열을 짓고 있던 거석은 대단한 경관을 이루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대구읍성 가까이 분포했던 이들 지석묘는 동문동지석묘와 공평동지석묘를 제외하곤 대대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자리에 남아있었다.

대구의 지석묘는 일제가 1927년 발굴, 조사한 ‘대봉동지석묘 조사보고서’를 통해 일약 유명해졌다. 조사가 있기 얼마 전까지도 지석묘의 큰 바위가 무엇을 뜻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선사시대의 묘표석이란 사실은 더욱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봉동지석묘의 발굴, 조사가 있고 난 후부터 우리나라 지석묘의 실체를 비로소 인식하게 됐고, 우리나라 선사 연구에도 서광이 비치게 됐다.

대구지석묘는 우리나라 선사연구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대구의 지석묘는 그 수나 학술적 가치, 규모면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된 선사유적의 보고(寶庫)임을 알게 했다. 얼마 전까지도 지석묘 이야기만 나오면 대구를 연상할 만큼 대구지석묘는 학계에서 유명했다. 그런데 20~30년 사이 그 기념비적인 유적인 대봉동지석묘는 물론 그 외 지역까지 대부분 도시 개발로 멸실됐다.

대구의 인구가 100만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읍성 가까이 있던 지석묘는 몇 곳이 제거되긴 했으나 대봉동, 이천동지석묘와 수성들의 지석묘군, 그 외곽 경산, 고산, 화원, 월배 쪽 낙동강 금호강 유역의 지석묘군은 깨끗이 보존돼 있었다. 인구가 200만이 넘어서는 1980년대가 되면 도심이 급속히 확장되고 이에 따라 장관을 이뤘던 지석묘들이 지상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지금이라도 개발을 우선으로 하는 행정 자세를 개선하지 않고 문화재보존정책을 개발에 종속시킨다면 역사유적도 지질시대의 화석을 보듯 모두 소멸하고 어쩌다 한두 개 정도 남게 될 것이다.

도시의 품격을 유지하고 높이려면 문화유적을 많이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 지금은 경제성장정책에 따르는 개발로 인해 매장문화재를 비롯한 유적의 파괴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 흐름은 이제 녹지를 지우고, 자연을 파괴해 공해를 낳고, 시민의 생활과 생명에까지도 위협을 주게 됐다.

역사유적이나 문화재는 교과서적인 설명이긴 하나 인간형성과 비물질적 사고를 풍부케 하고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문화재 파괴를 합법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개발의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는 개개인의 의식과 안목도 높아져야 한다. 행정기관은 물론 시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문화재보존을 위해 애쓰고 활동해야 한다.

윤용진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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