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박 셰프의 伊 음식에 빠지다] 127년 역사의 음식점 트라토리아…생햄부터 리지 에 비지까지 이탈리아 가정식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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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2   |  발행일 2015-06-12 제41면   |  수정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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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년째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리지 에 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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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셰프 조반니 베그로.

이탈리아 베네토주(州)의 남서쪽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인구 400여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오지마을.

1938년에 처음 문을 열어 1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음식을 묵묵히 선보이고 있다는 엄청난 트라토리아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 코메타(Cometta)까지 왔다. 울퉁불퉁 비포장 시골길을 한참 달려오니 ‘아! 여기구나’ 싶은 돌집 한 채가 내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색이 바랜 나무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니 산뜻한 청 앞치마와 생글생글한 미소가 인상적인 청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호텔 조리고교 졸업, 밀라노 최고의 호텔에서 경력을 쌓고 런던으로 건너가 트렌디한 세계 요리를 접한 후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는 조반니. 북적거리는 도시 생활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증조 할아버지가 만들고 온 가족이 혼신을 다해 지켜온 이곳을 위해 태어났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니 갑자기 식욕이 마구 당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00년대로 돌아간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의 트라토리아 내부가 참 신기하다. 반면에 홀의 세 배가 족히 넘을 듯한 큰 주방은 또 마치 과학실, 아니 연구실 같다고 할까. 이건 또 2050년 미래로 훌쩍 날아온 것 같아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가정식의 향연이 순식간에 식탁 위에 펼쳐진다.

돼지 다리를 통째로 염장 건조한 생햄을 단번에 뼈를 발라내어 말끔히 손질하던 페르디난도 할아버지의 멋진 솜씨를 보고 요리사에 대한 꿈을 키웠다는 손자 조반니가 즉석에서 가지런히 썰어온 프로슈토로 가볍게 워밍 업. 고기의 결을 잘 살려서인지 입에 넣자마자 순식간에 살살 녹아버린다. 내 인생 최고의 생햄에 마구 감탄하는 사이에 조반니의 어머니, 마리아 부인이 준비해 준 다음 요리. 꾸덕하게 잘 말린 대구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방식으로 사흘간 불려 별다른 양념 없이 팬에 볶아 냈는데, 올리브유의 은은한 향과 구수하고 달달한 대구살이 마치 우리네 코다리와 같은 식감에 담백함이 더해져 그 고급스러운 맛이 일품이다.

이곳의 소믈리에인 조반니의 누나, 프란체스카가 완벽한 와인 마리아주(Mariage·프랑스어로 ‘결혼’이란 의미. 술과 요리의 환상적인 조화를 뜻함)로 우리를 인도하면서 드디어 하이라이트가 등장. 두두둥! 1938년에 처음 선보여 127년간 4대를 건너 내려오면서 한치의 변함없이 똑같이 만들고 있다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리지 에 비지(Risi e bisi·완두콩 크림을 곁들인 이탈리아식 쌀요리인 리소토)’이다. 한입 쏙 넣으니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다. 26세 청년의 요리에서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 127년의 전통이 가슴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묵직한 맛이다.

빠빠베로 오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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