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말하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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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06   |  발행일 2015-11-06 제37면   |  수정 2015-11-06
“헬조선이 자학사관 때문?…책임은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정치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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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윤 교수는 “역사가 미래로 향해 나 있는 옛길”이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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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3일, 말 많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정한 뒤 처음 여론은 찬성과 반대가 비슷했으나 시일이 지날수록 반대 여론이 높았다. 특히 지난달 27~29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반대(49%)가 찬성(36%)보다 13%포인트 높았다. 전국적으로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대여론이 높았다. 역사학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대학생까지 다수가 국정화 반대시위와 서명에 동참했다.

대구·경북지역 9개 대학 역사 관련 전공 교수 40명도 지난달 19일, 국정교과서 집필진 참여 거부를 선언했다. 특히 경북대는 사학과 교수 9명 전원이 국정역사교과서 집필을 거부했다. 국정화 고시 이후 닥칠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집필진 구성과 이에 따른 집필과정에서 마찰음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 역사교과서가 나와도 역사적 사안에 대한 해석을 두고 갈등이 이어질 게 불문가지다. 이런 가운데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를 만났다. 윤 교수는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장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경북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그는 2011년 역사교육과정개발 정책연구위원회 위원으로 역사교육 개발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식획일화 불러
넓게 보면 사상 탄압이라 할 수 있다

1년만에 집필·검토·수정한다는 것은
토론과 논쟁 과정을 생략하겠다는 것
얼마나 자신없으면 집필진도 공개않나

자학사관이란 말은 견강부회
역사 미화한다고 미화되는 것 아니다
부끄러운 역사가 교훈…감추면 안돼

수능은 교과서 공통부분에서만 출제
검인정이라고 공부량 느는 것 아니다

국정화되면 정부의 책임 범위 커져
외교분쟁이 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
日中 공세 땐 빠져나갈 구멍 없어져

가장 안좋은 정부는 국민과 싸우는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후대에 어떤 평가 받을지 고민해야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했다.

“박근혜정부는 정부가 정하는 방향 이외엔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정치노선에 어긋나면 쳐낸다. 이렇게 하면 국가주의가 강화되고, 사회에 대한 통제가 강해지면서 의식이 획일화된다. 조금 더 넓게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사상탄압이라 할 수 있다. 국가가 정해준 기준에 따라 역사를 배우게 한다는 거다. 중국의 진나라가 그랬다. 의학, 농경, 점성술에 관한 책을 제외하고 현실에 비판적인 모든 책을 불사르게 했다. 그게 분서갱유인데 결과가 어떻게 됐나. 5~6년 만에 진나라는 멸망했다. 사상탄압은 엄청난 재앙을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영역이다.”

▲국정화 확정 고시 이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역사학자 90%가 좌파라고 했다.

“더 황당한 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가 북한의 지령이라거나 적화통일을 위한 주장이라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만 다르면 좌파로 덧칠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 횡행했던 매카시즘을 다시 보는 것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10대 무역강국이 됐다. 이런 시대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걸로 알고 있다. 중국은 역사교과서가 국정체제인가.

“아니다. 중국은 검인정체제다. 인민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을 많이 채택하지만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다. 미국은 검인정과 비슷한 지역인정제이며 영국, 프랑스, 독일은 자유발행체제다. 국정을 택하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해 터키 등 몇몇 나라에 불과하다.”

▲정부는 현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해 올바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얼마 전 ‘우리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는 현수막을 거리에 내걸었다. 이는 송아지도 웃을 말이다. 교과서를 쓸 땐 집필기준이라는 게 있다. 나도 위원을 하면서 의견을 낸 적이 있다. 북한의 체제와 정통성이 잘못 됐다는 걸 지적하고 김일성 독재체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주체사상을 언급했을 뿐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해서 한 건 결코 아니다.”

▲정부는 현 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폄훼한다고도 했다. 근대화, 산업화를 하는 과정에서의 노력이 부정적으로 해석되고 정치적 민주화만 부각시켰다는 말도 했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있어 분량을 배분하게 돼 있다. 국정화가 되면 검정체제하의 기준은 사라지고 뉴라이트 사관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이 크다. 2013년 교학사가 편찬한 역사교과서와 같이 일제강점기 식민지근대화론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인가, 아니면 1948년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건국연도를 1948년으로 하면 헌법에 위배된다.”

▲우리 역사를 패배주의로 보고 자학사관이란 말도 했는데.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다는 ‘헬조선’이라는 말도 자학사관에서 나왔다는데, 7포세대까지 나오지 않았나. 그건 정치인이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자학사관이란 말은 견강부회다. 역사는 미화한다고 미화되는 것이 아니다. 민족중심, 민족찬양, 국가주의로 간다면 파시즘과 같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 걸 비판하면서 그걸 따라가서야 되겠나. 우리가 국정화하면 일본이 좋아할 것이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도 할 말을 못할 것이다.”

▲중국에서 역사서술은 어떻게 했나.

“춘추필법이다. 기원전 770년부터 200여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춘추는 공자가 썼다고 하는데 기본 원칙은 직필이다.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관의 임무는 직필이다. 사관은 직책이 낮아도 군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3대가 사형을 당하는 사관 집안도 있었다. 오욕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남겨둬야 후대가 거울로 삼아 좋은 나라를 만든다. 학문적 양심을 버리게 하고 정치적 요구에 맞춰 서술하게끔 한다면 역사가의 존재 이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의 역사 서술은 퇴행적이지 않나.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만 봐도 그렇다.

“역사를 영토분쟁과 땅따먹기의 근거로 삼아선 안 된다. 고대사회에서 민족이란 개념은 희박했다. 중국 전국시대에 진나라가 통일했어도 초나라 사람을 초인이라 했다. 하나의 중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중국 역사학자가 한 명 있다. 그는 한국이 만주에 대한 고토수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중국이 동북3성을 한국에 주면 된다고 했다. 3개의 성이 대한민국으로 편입되면 대통령 선거를 할 텐데 동북3성의 인구가 대한민국보다 많다. 그런데 이들이 대한민국을 중국의 성으로 편입시키자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라고 했다.”

▲역사교과서가 하나로 통일되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주변국과 외교적 마찰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

“다른 교과서엔 그렇게 언급되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 없다. 책임 범위가 커진다. 고대, 중세, 근대를 막론하고 외교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정부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인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논란의 쟁점 속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진다.”

▲국사가 하나의 교과서로 단일화되면 수험생이 여러 과목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수능시험은 검인정 8개 교과서에서 공통된 부분에서만 나온다. 8개를 다 봐야 하는 게 아니고 공부의 양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특정 교과서에서만 시험문제를 낼 수 없다. 교과서를 하나로 한다면 논쟁의 쟁점에 대해 소송이 줄이을 것이다.”

▲그래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빼겠다고 했다.

“뺀다고 하더라도 학설이란 게 예민한 것이 많다. 하나의 교과서에서만 시험 문제가 나온다면 수능시험 소송도 8배 이상 많아질 것이다.”

▲초·중·고에서 배웠던 역사교과서를 대학에서 다른 시각으로 배워야 하는가. 역사 교수 대다수가 집필 거부를 선언했는데.

“초·중·고에서 배운 것과 다를 텐데 가치관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대학에선 교양국사를 배우는데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공무원 시험문제도 99% 대학교수가 낸다. 혼란이 가중되는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국정화를 하려면 대학교과서도 국정화해야 하고, 공무원시험용 국사교재도 단일화해야 한다.”

▲역사교과서를 펴냈던 출판사는 어떻게 되나.

“현재 검인정체제에선 8종이다. 하지만 검인정을 통과하기 전에 20~30종이 나온다. 출판사에서 돈을 대고 집필자에게 집필료를 준다. 사실 출판사에선 교과서만큼 돈이 되는 게 없다. 앞으론 국정교과서 주식회사로 바뀔 것이다. 출판업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현 역사교과서를 집필한 역사학자를 배제하겠다는 뜻인가.

“농사는 농부에게, 길쌈은 여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역사 전문가를 빨갱이 취급하고 있다. 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 이명박정부 때 국사편찬위원장을 했던 정옥자·이태진 교수도 국정화에 반대했다.”

▲현 교과서 근현대사 비중 너무 높다고도 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독립시켰다가 2009년 이명박정부 때 국사교과서에 포함시키면서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근현대 부분이 많다고 하는데 전체분량에 관한 집필기준으로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동학란을 동학혁명으로,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표현하는 집필기준이 있다.”

▲대구·경북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국정화 찬성 비율이 높은데.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아서 그럴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 역사교육을 소홀히 한 것 같다.

“가장 안 좋은 정부는 국민과 싸움을 하는 정부다. 지금은 유신 때가 아니다. 국민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적화라도 되는 양 해선 안 된다. 자신감이 그렇게도 없는가. 이태진 전 국편위원장이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고 해선 안 된다는 말을 했다. 부끄러운 역사가 교훈이 된다. 힘들고 어두웠던 역사를 지워버리려 해선 안 된다. 중국을 봐라. 장춘에 있는 중국의 정부 건물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이다. 부수고 허물지 않았다. 독일은 지금도 철저히 반나치 교육을 하고 있으며 더 강화하고 있다.”

▲역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사는 ‘미래로 향해 나 있는 옛길’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옛길이다. 역사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역사를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며 쓰레기통에서 배울 게 없다고 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처럼 위험한 말이다. 역사를 개인에게 대입시켜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개인이 현실에서 어떻게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겠나. 역사유기체설이란 게 있다. 역사도 탄생, 성장, 죽음의 과정에 이른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정부와 역사학계의 갈등이 심해질 것 같다.

“역사는 모든 학문의 출발이다. 국가가 개입할 분야는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다. 2017년에 단일 역사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해 말에 대통령선거가 있다. 검정이 끝나는 데 보통 3~4년은 걸린다. 1년 만에 교과서를 쓰고, 검토하고, 수정하고 할 수가 없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0%였는데 이를 표준 모델로 해 일부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 집필진 구성도 한두 달 걸린다. 고대·중세·근현대사가들이 끊임없이 회의하고 토론하며 논쟁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될 것이다.”

▲정부는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나 자신감이 없으면 그런 말을 하겠나. 그렇게 하면 책임집필을 할 수 없다. 국정교과서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를 100년 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예를 들겠다.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북위의 태무제가 화북지방을 통일했다. 태무제가 한족 지식인 최호를 불러 국사편찬을 지시했다. 중국 역사서술의 춘추필법을 따라 최호는 태무제의 할아버지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궁지에 몰리자 그의 아버지를 적에게 포박시켜 처벌받게 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다. 그 결과 태무제는 최호를 포함해 3족을 멸했다. 태무제가 그렇게 한 역사가 가려지는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고민해야 한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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