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오세영 시인, 난해한 시를 지향하더라도 금기와 지켜야 할 원칙 있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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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0   |  발행일 2015-11-20 제35면   |  수정 2015-11-20
“충분히 쉬운 표현으로 더 깊은 메시지 전달 가능…극단적 미래파 詩는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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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이 50여 년 시를 쓴 사람조차 이해하기 힘든 극단적 미래파 시는 ‘사기’다. 시를 ‘인질’로 삼은 것이다. 예컨대 마누라가 도망쳤다고 해서 무단히 행인 납치소동을 벌이는 것처럼 난해하다. 그냥 주목을 끌어 자기를 내보이려는 행동이다.

‘사슴이 오늘 과수원에 갔습니다’ 혹은 ‘사슴 한 마리가 학교에 갔습니다’, 이 경우 사슴과 과수원, 나와 학교는 각각 등가성을 가진 단어들로 나를 사슴으로, 학교를 과수원으로 환치시킨 것이다. 이 문장은 비록 단어들을 등가성을 지닌 다른 단어들로 바꾸어 놓긴 했으나 아직 언어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가령 ‘사슴, 하늘, 나무, 달린다’란 문장을 보자. 의미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등가성과 인접상이 배제된 언어들의 무분별한 공간적 나열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래파 시는 마치 신을 배제한(혹은 타살한) 오늘의 물질문명이 결과적으로는 인간 그 자신조차 비인간화시키는 결과물로 보인다.

신사조에 사로잡혀 비록 난해시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깨버려서는 안 되는 금기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더 이상 언어의 본질을 훼손한 언어, 소통 불능의 난해한 언어를 지향해선 안 된다. 충분히 쉬운 표현으로 더 깊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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