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진또배기와 처용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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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9   |  발행일 2020-04-09 제26면   |  수정 2020-04-09
'진또'와 '솟대'는 같은 의미
재앙을 막아주고 풍년 기원
처용가도 나라의 평안 빌어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에
'진또배기'불러 위로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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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마을 어귀에 서서 마을에 평안함을 기원하는 진또배기. 오리 세 마리 솟대에 앉아 물, 불, 바람을 막아주는 진또배기.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바다의 심술을 막아주고, 말없이 마을을 지켜온 진또배기, 진또배기, 진또배기. 10여 년 전에 가수 고 이성우씨가 불렀던 노래인데, 최근 모 방송의 트로트 경연에서 대구 출신 젊은 가수 이찬원씨가 불러서 다시금 화제가 된 노래이기도 하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진또배기'에 대한 어원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자료를 찾다 보니 강릉 강문동이라는 포구마을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 나무 끝에 나무오리 세 마리가 경포호를 바라보며 올라앉아 있는데 이 지역에서 진또배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마을의 재앙을 막아주고 풍년을 기원한다고 믿고 있어서 신성하게 여긴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전통 신앙에 나오는 솟대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솟대와 진또배기의 연결점은 무엇인가 궁금해져서 찾다 보니 고려가요인 청산별곡의 한 대목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청산별곡의 7연에 '사사미 짐ㅅ대예 올아셔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에 나오는 '짐ㅅ대'를 김완진 교수는 장대로 해석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옛말에 장대를 '짐ㅅ대'라고 했고, 이것이 진또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배기는 박다에서 비롯되었는데, 박-(박다)+-이(일, 사람)로 되어 박이>백이>배기로 변천된 것이다. 그러므로 진또배기는 장대를 박는 일 혹은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장대를 세우는 기록은 대략 고려 시대에 등장한다. '고려도경'을 보면 옛날부터 장대를 세워 일반 집과 구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행위는 귀신을 섬기면서 나쁜 기운을 누르고 기양(祈禳)을 하는 풍습이라고 한다. 그러니 장대를 세우는 행위는 액막이와 풍년을 기구(祈求)하는 전통 신앙이었던 것이다. 즉 솟대는 예부터 내려온 장대 세우기(立竿)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진또와 솟대는 같은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고대 선사 시기의 북아시아 솟대는 모두 발생 기원에서 일치점을 보여주고 있다. 솟대 전문가 이필영 교수는 시베리아의 솟대는 층위별로 계단이 나뉘어 있고, 샤먼의 제의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솟대는 바로 마을공동체의 풍요를 기원하는 목적과 발생 기원을 지닌 후대의 시대적 산물로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있다고 했다. 기원이나 의미로 보아서 솟대(진또)는 우리 민족에게 재앙을 막아주고 풍년을 가져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신라 향가 중에 처용가가 있다. "동경(경주)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라고 해석되는데, 이렇게 처용이 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니 역신(疫神=천연두·홍역·학질을 일으키는 질병신)이 처용의 노하지 않음에 감복하여 사죄하고 물러가면서 앞으로 처용의 모습이 있는 곳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가 있다. 이 처용가는 고려·조선 시대에 나례(儺禮) 공연 때 처용가무에서 부르면서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고 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역신을 물리치고 평안을 기원한다는 발상은 오래전 우리 조상들의 역설적인 기구(祈求)의 행위였으리라.

요즈음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과 힘겹게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처용가를 부르며 기구했던 옛사람들의 심정으로 진또배기를 부르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김덕호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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