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敵은 혼노지에 있다

  • 이재윤
  • |
  • 입력 2020-04-17   |  발행일 2020-04-17 제23면   |  수정 2020-04-17

2020041601000615100025231

190(범여권) 대 110(범야권). 경악스런 격차다. 유시민의 기대치였을 뿐 전문가 예측에는 없던 결과다. 여도 야도 안 가본 길이 열렸다. 개헌 말고는 다 할 수 있는 슈퍼파워를 거머쥔 여당. 정당사에 보기 드문 독주다.

투표일, 이웃 어르신들은 온 힘을 쏟는 듯했다. '꼭 투표해야 한다'며 이날에 맞춰 병원에서 퇴원했다. 투표장 향하는 자식의 등을 다독이며 다짐받고 또 받았다. 평소와 다른 어색한 모습이지만 그리해야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SNS에는 투표 독려 글을 올리느라 분주했다. 대구경북의 민심은 그랬다. 대구경북 25석 모두 보수 후보가 휩쓸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환호하지 못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인 줄 알았다. 대구경북의 민심과 4·15 총선 결과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보수 참패였다. 어찌 이런 일이? TK 열혈보수 지지자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여기저기서 뜨거운 분노와 좌절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어찌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라면, 얼마간 위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뒤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달랐을까. 이 불일치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 어긋남은 과연 가치 있는 것일까.

'TK 성찰하라'는 경고가 뒷덜미를 후려친다. '선전 선동술에 능한 좌파 전략에 속았다' '대중민주주의의 비극' '바이러스의 승리'라고? 헛되고 부질없다. TK를 본거지 삼은 보수. 최근 4전 전패했다. 네 번을 잇따라 졌다면 문제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 경고음이 오랫동안 울렸는데도 성찰이 없었다. 고집스레 외면했다. 여당이 '야당 복 있다'는 말을 왜 하고 다니겠나.

'적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고 한다.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진격하던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갑자기 주군인 자신에게 칼을 겨눴다. 적이 아니라 아끼던 가신의 공격에 당했다. 전장의 본거지 혼노지 사원에서의 변(變)이다. '위화도 회군'의 일본판이다. '안의 적'을 경계하라는 상징적 예이다.

한국의 보수, '혼노지의 적'을 도려내지 않으면 다음 대선도, 미래도 없다. 총선 후 모든 분석은 보수 내부의 패인(敗因)에 주목한다. △이념도 제대로 못 세우고 △과거와 단절도 못하고 △새로운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했다. 준열한 비판이다. 보수가 교본처럼 받드는 한 언론의 사설은 '정권 실정(失政) 아무리 커도 통합당 만은 찍을 수 없다는 민심'이라며 정곡을 찔렀다.

보수의 시선(視線)은 상식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이게 오래되고 쌓이니 신뢰가 상실되고 믿음이 깨졌다. 아무리 애써도 민심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이유다. 뼈아픈 약점인데, 사나워진 보수는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총선을 계기로 '보수 성찰'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한국정치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도 그렇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역시 사람이다. 리더십의 변화가 출발점이자 얽힌 고리를 푸는 열쇠다. △보수 이념의 정립 △과거와의 단절 △상식의 회복도 새로운 리더십으로 가능한 일이다. 에둘러서 뭐하겠나. 박근혜·황교안의 낡은 리더십과는 이별해야 한다. 이들의 역할은 끝났다. 김종인·박형준·유승민·안철수·오세훈·원희룡 같은 새로운 리더십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외양만 갖췄을 뿐 화학적 결합은 이루지 못했다. 보수의 한계였다. 황교안 대표가 사퇴했다. 지도부 모두 퇴장하는 게 마땅하다. 비대위 구성과 전당대회 때부터 리더십 교체의 극적 무대가 펼쳐져야 한다.논설실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