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배낭 메고 중미를 가다] 쿠바 마음의 고향 비날레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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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2   |  발행일 2020-05-22 제36면   |  수정 2020-05-22
초록의 대지, 산, 하늘이 닿은 푸른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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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생태마을 비날레스는 쿠바 다른 지역의 황량한 풍경과는 달리 동글동글한 산과 숲으로 이루어진 분지 형태여서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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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앞의 잔디밭에는 옛 쿠바 원주민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남녀가 나무로 만든 창을 들고 원시인이 입었던 간단한 옷만을 걸치고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숲의 마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180㎞에 위치한 인구 약 2만7천명의 비날레스는 쿠바섬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생태 도시로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비날레스 계곡은 산과 계곡 사이에 펼쳐져 있는 넓은 경작지가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쿠바의 푸른 낙원으로 불리는 자연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비날레스로 떠나야 한다. 이곳에는 고대 벽화, 그리고 동굴과 시가(Cigar)의 품질이나 경작지 규모 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쿠바 최대의 시가 농장 또한 이곳에 있다.

아바나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면 택시나 여행사 버스 그리고 시외버스인 비아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바나에서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자 고속도로가 나타났다. 왕복 4차로의 고속도로는 평지에 곧게 쭉 뻗어 있었지만 많이 훼손돼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버스 안은 배를 탄 것처럼 출렁거리고 흔들거린다. 그러나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 사고 위험성은 없어 보인다. 고속도로 곳곳에서 히치하이킹을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다. 쿠바에서는 지나가는 차가 비었으면 사람을 태워주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있다. 대중교통이 열악해 트럭이나 승용차에 동승하는 방법으로 이동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에너지 위기 상황이 도래하면서 제도화되었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야자수와 사탕수수·담배 농사가 주로 이뤄지고 있는 평화로운 들녘이 창밖으로 펼쳐진다. 고속도로에는 우마차와 자전거 그리고 트랙터를 개조한 운송수단 등이 줄지어 나타난다. 당나귀, 말, 자동차, 버스 할 것 없이 모두 손들고 기다리고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기도 한다.

3시간이 지나서야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왔다. 다시 시골길로 접어들어 얼마간 달린 뒤 약간 높은 산길을 올랐다. 비날레스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초록으로 뒤덮인 대지 위에 저 멀리 산들이 용마루처럼 하늘에 닿아 있고, 여기저기 담배밭이 펼쳐져 있다. 넓은 들에 솟아 있는 산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침식돼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쥐라기 공원을 보는 듯한 독특한 풍경이다. 짙푸른 들판 중간중간 우뚝우뚝 솟아 있는 둥근 봉우리들은 사뭇 신비롭기까지 하다. 짙은 녹색의 열대 우림지역의 또 다른 아름다운 풍광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전망대는 비날레스 계곡을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작은 주막이 있었는데, 1959년 카스트로 사령관이 이곳을 본 후 호텔과 전망대를 짓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품 판매점과 작은 카페테리아가 자리를 잡고 있고, 아래쪽에 보라색 호텔이 보인다.

쿠바섬 태고의 모습 간직한 생태 도시
야자수·담배밭 펼쳐진 평화로운 들녘

신비로운 쥐라기 공원 보는 듯한 풍경
세계 최상 품질 시가 만드는 담배농장
손으로 마는 최고 장인 토르세도레스

원뿔 모양 석회산 언덕 비옥한 골짜기
인디오가 침략 피해 숨어든 천연동굴
동굴서 떨어지는 물 맞으면 행운 속설

거대한 암석절벽 위에 그린 최대 벽화
인간·동물 변화무쌍한 진화 과정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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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날레스의 담배밭이 흰 구름 아래 끝없이 펼쳐지고, 군데군데 농가와 시가농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위).담배농장 농부는 쿠바 시가 중에서도 최상품을 재배한 담뱃잎을 숙성시킨 것이라며 돌돌 말아 시가로 만들어 내게 건넨다. 쿠바 시가로 폼만 근사하게 잡았다.

◆세계 최고 최상의 시가농장

전망대를 내려오니 들판에는 멀리 또는 가까이에 마치 모자를 씌워 놓은 듯 둥근 산이 여기저기 둥실둥실 떠 있는 듯하다. 이 지방에는 중생대에 형성된 석회암이 두텁게 분포해 바위가 빗물에 녹아 내려 형성된 지형이다. 흰 구름 아래 초록의 담배밭 사이로 농가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

담배농장으로 들어서니 길고 넓은 담뱃잎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이곳의 토양과 기후는 담배가 자라기에 최상의 조건이어서 이 담뱃잎으로 쿠바 시가 중에서도 최상품을 만든단다. 끝없이 펼쳐진 담배밭에서 농부들은 담뱃잎을 따 건조실에 걸어 말리고 있다. 담배농장에서 만난 농부는 담뱃잎을 하나 펼치더니 돌돌 말아 시가로 만들어서 내게 준다.

직접 만든 담배를 보여주며 시가가 만들어지는 공정에 대해 설명한다.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은 직접 담배를 말아 보기도 한다. 시가 담배 씨앗은 깨알보다 작고 미세하다. 그 씨앗을 뿌린 후 3개월 정도 자라면 놀라울 정도로 잎이 커지고 줄기도 성인키만큼 자란다. 이를 수확해 잎들이 누런 황색으로 변할 때까지 2개월간 서늘한 건조실에서 말린다. 말린 잎은 향과 맛에 따라 분류하여 꿀과 술, 여러 향료와 함께 상자에 재어 놓는다. 일정 기간이 지나 숙성시킨 잎을 다시 그늘에서 말린 후 그 잎들을 잘라 용도와 기호에 알맞게 촘촘히 말면 시가가 완성되는 것이다.

시가는 너무 촘촘히 말아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하게 말아도 안 된다. 쿠바산 시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결은 가장 적절한 기후와 더불어 시가를 직접 손으로 마는 장인들 '토르세도레스(Torcedores)'가 있어서다. 이들의 실력은 자타 공인 세계 최고다. 외국의 시가 농장으로부터 초청받아 거액의 돈을 받고 시범 행사를 하며 기술을 전수하기도 한다. 정성스럽게 재배하고 엄선한 재료를 자연과 더불어 숙성시켜 장인의 감각으로 만드는 쿠바 시가는 우리나라 전통 된장과 김치를 떠올리게 한다.

◆인디오 천연동굴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비날레스 마을을 벗어나 인디오 동굴로 향했다. 비날레스 계곡에는 천연동굴이 많아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 동굴을 찾는 것이 좋다. 군데군데 전망대에서 본 원뿔 모양의 석회산인 '모고테(Mogote)'들이 띄엄띄엄 나타난다. 비날레스 계곡은 '모고테'라고 불리는 원뿔 모양의 석회암 언덕이 널리 분포한 비옥한 골짜기다. 모고테는 1억6천만 년 전 쥐라기 시대에 해저에 있던 석회지층이 밀려 올라와 형성되었다고 한다. 구멍이 뻥뻥 나 있는 모고테들은 하나같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과 터널이 있다. 모고테라고도 불리는 이 골짜기에는 식물이 무성하며, 이곳에 형성된 동굴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몇몇 동굴은 식당으로 쓰일 정도로 크고, 대부분의 터널은 마을의 샛길로도 사용된단다. 녹색 열대림으로 덮여 있는 모고테들은 하얀 속살 석회암을 노출하며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해낸다. 특히 산등성 아래에 펼쳐진 붉은 토양의 담배밭과 조화를 이루는 장관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찾아간 '인디오 동굴'은 인디오들이 스페인군의 침략을 피해 숨었던 동굴이다. 천연동굴이 많은 비날레스 계곡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이 힘들어 도망쳐 온 흑인 노예들이 숨어 지내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단다. 마치 공룡이 산을 파먹은 듯한 절벽 아래에 커다란 동굴 입구가 있다. 동굴 앞에 있는 잔디밭에는 옛 쿠바 원주민들의 모습을 재현한 공연을 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에 불을 밝히고 들어가면 석회암 바위산에 만들어진 동굴이라서 종유석을 볼 수 있다. 이 동굴 안에는 곳곳에 자연이 빚은 조각들이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준다. 이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을 코에 맞으면 영원히 행운이 함께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이곳에서 줄지어 물을 맞는다. 동굴 중간에 이르면 갑자기 길이 끊기고, 아래에 물이 흐른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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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날레스의 명물인 거대 암벽화는 유명 화가인 곤잘레스가 5년간 바위에 매달려서 완성한 작품으로 공룡, 이구아나, 달팽이, 바다 생물, 아담과 이브 등이 그려져 있다.

◆거대한 벽화

동굴에서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비날레스 계곡 샛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멀리 절벽에 쿠바의 역사를 그려놓은 선사시대 벽화(Mural de la Prehistoria)가 나타난다. 화려한 색감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또한 쿠바의 독특한 색이 느껴진다. 물론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선사시대에 있었다는 원시의 장면을 상상하여 그린 일명 '두 명의 자매(Dos Hermanas)' 라고도 불리는 벽화다.

레오비힐도 곤잘레스 모리요(Leovigildo Gonzalez Morillo)가 다른 화가들과 1959년부터 5년간 카스트로의 명령에 의해 그렸다고 한다. 모고테의 거대한 자연암석 절벽 위에 길이 180m, 높이 120m의 세계 최대의 벽화다. 벽화에는 이 지역의 형성과정과 인간의 변화무쌍한 진화 과정을 상징하는 공룡, 이구아나, 달팽이, 바다 생물, 아담과 이브 그리고 아이들을 그려 놓았다. 내가 보기에는 아름답다기보다는 엄청 크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는 작품이다.

해가 기우는 비날레스 들판에는 농부들과 마차가 집으로 향하고, 사람들이 모여서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기도 한다. 하늘의 흰 구름이 붉은색으로 바뀌며 땅거미가 진다. 그날 밤 비날레스 마을의 유난히 파란 하늘엔 별들이 쏟아지고, 저녁노을에 더욱 선명한 야자수의 실루엣은 아직도 가슴속에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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