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일본이 웃는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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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1   |  발행일 2020-06-01 제26면   |  수정 2020-06-01
자체 수익 없는 시민단체에
투명성·공정성은 필수요건
위안부 피해자 위해 헌신한
30여년 공로는 인정하지만
의혹만으로도 사퇴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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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소설가

여러 해 전에 일본 학자들과 선상토론을 한 적이 있다. 일본 극우성향의 학자가 '한국인 위안부는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은 일본에 합병됐기에 한반도는 일본국이었고 위안부로 징발된 여성들은 일본인이라는 가당찮은 요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젊은 시절, 나 혼자서라도 일본에 쳐들어가고 싶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심정'이라고 언성을 높여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결국 그들은 어떤 변명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요즘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정의기억연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신) 윤미향 전 이사장의 의혹에 일본의 극우인사들이 파안대소할 것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일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주장이 여러 정황상 얼추 사실로 밝혀지며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횡재한 자가 득세했다는 사실에 일본 극우파들이 웃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때맞추어 "위안부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은 없었고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근거도 없다"는 주장을 편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을 반기는 일본 극우파의 환호를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일본정부가 강제로 끌고 간 게 아니라 기존의 공창제도일 뿐이며 피해자 스스로 더 나은 수입을 바라고 자원한 것이라고 우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들의 고통과 분노의 크기를 상상할 뿐 그 원통함을 모를 수밖에 없다.

엊그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윤미향 전 이사장은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폭로 당시 의혹을 불러온 것만으로도 즉각 사퇴하고 진실 토로와 더불어 참회를 했어야 마땅했다. 그를 두둔하고 옹호하는 부류들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친일, 반평화 세력의 부당한 공세'라고 힐난한다. 정의기억연대 설립 목적이 위안부를 돕기 위한 조직이지 시민운동가들의 이익창출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 조국 사태와 같은 충격을 받게 된다.

이미 2004년 1월에 위안부 33명이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 문 닫아라'라는 성명을 냈고 '정대협은 성금을 거두지만 혜택 받은 적이 없다. 할머니를 앵벌이로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고 했다. 정의로운 일을 하는데 감히 비판하겠느냐는 '정의빙자패권'과 '위안부 피해자 독과점 이익'에 빠져든 것 같다. 정의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데 누가 감히 시비 걸까 하는 '비윤리적인 우월감'에 빠졌을 수도 있다. 국민의 세금과 성금을 한 푼이라도 잘못 쓰면 호되게 질책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상대를 '친일세력의 최후 발악'이라고 몰아붙인 죗값은 역사가 갚아 줄 것이다. 시민단체는 자체 수익이 없어서 정부의 보조금과 시민들의 성금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재정 투명성과 운영 공정성 및 사업 명료성이 보장돼야 한다.

건강한 시민단체들이 이번 사태로 성금이 줄어들고 봉사자들의 손길이 멈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시민단체의 기를 죽이고 주눅 들게 한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수사로 머지않아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여권 일각에서 지난 총선 압승으로 자만에 빠져 이번 사태를 두둔하면 위선옹호세력이나 국민을 깔본 권력으로 낙인 찍혀 다음 재보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 쓴맛을 볼 수도 있다.

1천원짜리 초콜릿 한 개를 사면 카카오 농민에게는 겨우 20원 정도, 카카오 따는 아이들에겐 더 형편없는 액수가 돌아가기에 초콜릿을 '아프리카 아이들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회사나 중간 상인들의 배를 불리고 정작 아이들은 초콜릿 맛을 보지도 못한다. 30여 년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헌신한 공로는 인정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아이들의 눈물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을 만들면 '현대판 친일파'가 된다는 걸 잊지 말라.
김홍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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