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진 코미디 무대 넘어 트로트 새길 여는 개그맨가수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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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6   |  발행일 2020-06-06 제16면   |  수정 2020-06-06
신파 걷어낸 흥겨운 멜로디에
기존인지도 활용 친근하게 접근
설자리 줄어든 개그맨에 활로
가요계 저변 확대한단 호평 속
지나친 난립 인한 대중싫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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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열풍을 타고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지는 개그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타고난 끼와 기존 가수 뺨치는 가창력으로 '개가수'(개그맨 +가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들은 특유의 예능감과 신박한 콘셉트를 무기삼아 점차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사랑의 재개발'의 유산슬(유재석), '주라주라'의 김다비(김신영), '스물마흔살'의 5인조 그룹 '마흔파이브' 등은 TV 토크쇼와 라디오 프로그램, 각종 음악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정식 가수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중이다.

◆'신 트로트 전성시대'에 동참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다소 유치해보이는 반짝이 의상에 중독성 있는 가사로 단숨에 대중의 관심을 끈 유재석은 지난해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 프로젝트를 통해 트로트 신인 가수 유산슬로 전격 데뷔했다. 그는 신곡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이별의 버스 정류장' 등을 내놓고 KBS1 '아침마당'까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아침마당' 시청률은 두 자릿수를 돌파하며 자체 최고 화제성 순위를 경신했다.

이러한 유산슬의 인기로 온라인에는 유산슬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팬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팬카페도 등장했다. 데뷔 초 유재석과 닮은꼴 외모로 주목받았던 개그맨 정범균은 유산슬의 인기에 편승해 그를 벤치마킹한 트로트 가수 '유산균'으로 데뷔했다.

2018년 결성한 그룹 셀럽파이브(송은이·신봉선·김신영·안영미)로 가수 활동을 한 바 있는 개그우먼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로 변신, 직장인 공감송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휴가 좀 주라. 칼퇴 칼퇴 칼퇴. 집에 좀 가자" 등 흥이 절로 나는 멜로디와 촌철살인의 가사가 돋보이는 그의 대표곡 '주라주라'는 유산슬에 이어 성인가요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뷔, AOA 설현 등 절친 연예인들이 각종 SNS로 응원을 보내면서 연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개그맨 김영철은 유산슬·김다비보다 더 일찍 개가수로 데뷔한 케이스다. 2017년 트로트 가수 홍진영과 함께 작업한 곡 '따르릉'으로 데뷔했다. 신나는 멜로디와 반복적인 가사, 김영철의 맛깔스러운 창법이 어우러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엔 트로트에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DM)을 더한 신곡 '신호등'을 발표하는 등 개가수로서의 인지도를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싱글곡 '스물마흔살'로 지난해 데뷔한 '마흔파이브'는 허경환, 박영진, 김원효, 박성광, 김지호 등 KBS 22기 공채 개그맨이자 1981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이 뭉쳐서 만든 그룹이다. 역시 가수 홍진영이 직접 프로듀싱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마흔파이브는 자신들을 "남자라면 한번쯤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밴드"라며 "진정성을 가지고 팀을 만들었고, 가사도 직접 썼다"고 말한다.

데뷔 후 KBS '뮤직뱅크'는 물론 SBS '미운 우리 새끼', KBS2 '해피투게더'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 예능프로그램에 부지런히 얼굴을 비치며 그룹 홍보에도 열심이다.

이외에도 '미스터트롯'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영기, '미스트롯' 5위를 차지한 개그우먼 출신 김나희, 지난해 첫 트로트 앨범 '전기뱀장어'를 발표한 손헌수, 최근 신곡 '장모님'을 내놓은 김경진 등이 개가수로 활동 중이다.

◆코미디 프로의 쇠락과 트로트 인기 상승이 촉매 역할

개가수의 등장은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과 맞닿아 있다. 특히 트로트는 다른 음악장르에 비해 개그맨 특유의 끼와 친근감을 앞세울 수 있고, 기존 인지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신곡 홍보에도 수월한 편이다. 김광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여기에 더해 과거 신파적 미감을 내세우며 슬픈 노래로 자리매김했던 트로트가 흥겨운 노래로 바뀌면서 개그맨들의 무대로 새롭게 부상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각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 폐지 등으로 설 자리가 줄어든 개그맨들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가수로 활동해 히트곡이 생기면 주수입원 중 하나인 행사 섭외 빈도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MBC 1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영기도 연이은 프로그램 폐지에 설 자리가 없어지자 트로트에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개그맨 시절부터 노래 실력을 인정받았던 만큼 마침내 트로트 가수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허무개그로 데뷔 첫해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손헌수 역시 비슷한 이유로 2014년 데뷔곡 '디스코맨'을 내놓으며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 개가수의 등장이 가요계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개가수의 난립으로 대중이 금세 싫증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광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과 오래 호흡하며 사랑받기 위해선 철저하고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며 "음악에 대한 진지함과 신선한 매력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과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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