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본인상'과 '사글세'의 추억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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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4   |  발행일 2020-09-24 제26면   |  수정 2020-09-24
산 사람이 고인을 위한 의식
죽은사람은 자신 喪 못치러
하지만 '본인상'은 널리 쓰여
원래 의미 인식 못하고 사용
'사글세'와 비슷한 상황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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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본인상'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신문이나 사내 게시판에 "모모 제약 자금부장 이아무개 본인상"과 같은 형식의 부고에 종종 등장한다. 이 정도면 무슨 의미인지를 대충 짐작하리라 믿는다. '사망' '별세' '영면' '서거' '작고' 등 죽음에 관한 참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본인상'이란 단어가 이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사람과의 인연과 마찬가지로 단어와의 인연도 뜻밖의 일을 계기로 맺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e메일로 문서를 하나 보낼 터이니 혹시 문제가 있을 만한 내용을 확인해 주기를 부탁한다는 것이다. 일단 알았노라고 답을 하고 메일함을 열었더니, 메일에는 한글 문서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문서의 제목은 "'본인상'이라는 말의 문제점"이었다. 장장 여섯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상(喪)'이란 본래의 의미가 살아 있는 사람이 고인을 위해 치르는 의식을 이르는데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자신의 '상'을 치를 수는 없다. 즉 '상'을 '사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우리말샘의 '본인상'의 풀이, '당사자의 상사(喪事)를 이르는 말'은 '상(喪)'의 의미와 상충이 된다. 또한 '온라인 가나다'라는 한국어 관련 상담 코너에서 "'본인상'이라는 표현이 허용된다"라고 답변한 내용도 문제가 있다. 이 문건은 국립국어원에 보내는 일종의 청원서인 셈이다. 참 바른 말이었다. '본인상'이 가능하려면 죽은 사람이 스스로 수의를 입고 염을 한 후에 관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이것이 가능하냔 말이다.

시종일관 '본인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진 문서를 읽어나가는 동안 내 입가의 웃음은 사라졌다.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본인상'에 관한 판단은 표준어 결정에 있어서 현실적 언어 사용 양상과 언어 사용의 정확성 가운데에서 어느 편을 우선할 것이냐는 입장과 관련이 있다. 현실 언어 사용을 표준어의 기준으로 삼은 대표적인 예는 '사글세'를 들 수 있다. 1988년에 "어원에서 멀어진 형태로 굳어져서 널리 쓰이는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라는 표준어 규정이 도입된다. 이 규정 덕분에 기존에 표준어로 인정받던 '삭월세(朔月貰)' 대신에 '사글세'가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비록 한자어에서 온 어원을 확인 가능하더라도(삭월세) 널리 사용하는 형태(사글세)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표준어로 삼겠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상'은 현실 발음이 단어 형태를 변화시킨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들이 '상(喪)'의 원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글세'와 유사한 성격을 띤다.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최근에 온라인 가나다에서 '본인상'에 대한 답변을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추가되어 있었다.

-'홍길동 본인 상'은 의미적으로 부적절합니다. '상(喪)'은 '상중(喪中)에 있음'을 뜻하고 '상중(喪中)'은 '상제의 몸으로 있는 동안'을 뜻하는데, 홍길동이 죽은 경우에는 본인이 상제의 몸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홍길동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 '홍길동 조부 상', 할머니가 돌아가신 경우 '홍길동 조모 상'과 같이 쓰이는 형식에 맞추어 홍길동 본인이 죽은 경우 '홍길동 본인 상'과 같이 쓰기도 하는 듯합니다.-
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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