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 "국학, 낡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조상이 축적한 지식 삶에 활용해야"

  • 김수영,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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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9 07:34  |  수정 2021-08-12 15:30  |  발행일 2021-05-19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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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취임한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국학 자료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 한국국학진흥원이다. 개원 25주년을 맞은 올해는 이 위상에 걸맞도록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는 기반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정 원장의 뒤로 엄청난 규모의 소장자료가 보인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한국국학진흥원이 지난 3월 정종섭(63)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원장으로 맞았다. 경주 출신의 정 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대 법대 학장과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낸 법학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한국국학진흥원을 맡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아버지가 한학자라서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한자를 익히기 위해 자연스럽게 붓글씨도 썼다. 화단에서는 이미 서예가 정종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40대 때 도시서당을 꿈꾸며 지인들과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인문학에 관한 관심이 깊어지자 법학, 의학, 문화예술 등 각 분야 최고 지성인과 모여 '제4세계그룹'을 결성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보니 국학진흥원으로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음표를 던질 이유가 없었다.


국학은 역사문화 유산 발굴·연구하는 학문
이상 국가 건설 실천한 선인의 지혜 배워야
경북도 설립 국학진흥원 올해 개원 25주년
국역·디지털화 등으로 4600명 일자리 창출
징비록·수운잡방 세계유산 등재도 준비 중


▶한국국학진흥원이 하는 일은.

"경북도는 1996년 안동에 국학진흥원을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문중·종가 등 민간에서 소장한 국학자료들을 수집·보존하는 것은 물론 한문자료를 번역·연구한다. 최근에는 자료 활용과 콘텐츠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위해 소장 국학자료를 국역해 교양서 등으로 발간·보급한다. 영화나 웹툰 등 문화콘텐츠산업의 자원으로 활용하도록 디지털 아카이브도 구축 중이다. 국학진흥원 홈페이지의 '스토리테마파크'에 접속하면 다양한 콘텐츠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이 자료를 활용해 제작한 웹드라마·웹툰도 있다."

▶국학이란.

"국학은 선조가 남겨놓은 우리 고유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유산들을 발굴해 그 의미와 가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국학에는 인문학을 비롯해 법학, 경제학, 자연과학, 의학, 예술 등 모든 영역이 포함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국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우리의 문화적 독창성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기반이 된다. 독창성에 내재한 보편적 가치는 인류문화 발전에 도움이 된다. 세계 모든 나라가 공유할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국학 연구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유는.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등에 관한 자료를 국학진흥원에서 수집·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상적 사회·국가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그들의 정신에서 현재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이런 측면에서 단순한 자료의 번역·전시 및 학술대회 개최 등에 그쳐선 안 된다. 선인의 삶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을 꿈꾸게 하는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

▶국학진흥원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 많은 성과를 냈다.

"2015년에 소장 자료인 '유교책판', 2017년에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각각 등재됐다. 2016년과 2018년에는 '한국의 편액'과 '만인소'가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이 됐다. 한 기관에서 기록유산을 4건이나 보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 외에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소장자료들이 적지 않다. '징비록' '삼국유사' '내방가사' '수운잡방' 등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준비 중이다."

▶국학자료 국내 최다 소장기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재 약 58만점을 보유하고 있다. 소장자료 중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을 비롯해 보물이 1천837점, 국가 및 도지정 문화재가 7만여 점에 이른다. 이는 전체 자료의 약 12%를 차지한다. 자료의 양만이 아니라 가치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올해 국비 예산을 많이 확보했다. 중점 사업은.

"올해 총예산 규모는 360억원이다. 이 중 국비는 202억원으로 전국 지방출자출연기관 중 가장 큰 규모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의 사업규모를 확대했다. 국학자료의 국역 및 디지털화 사업을 확대, 추진 중이다. 조선시대에 국한했던 조사·수집사업도 근대기록자료까지 확장했다. 개원 25주년을 맞은 올해는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는 기반을 다지겠다."

▶국비 예산 증액으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도 크다.

"올해 국비 예산의 대부분은 국학 관련 사업에 투입된다. 이들 사업을 통해 총 4천6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지난해 시작된 '국학진흥청년일자리사업'은 10년간 매년 100여 명의 청년을 고용해 소장 자료의 국역과 디지털화를 추진한다. 올해 신규사업인 '실버일자리사업'에서는 근대기록자료를 조사·수집하는 조사원을 양성한다. 50~60대 중장년층 500명을 선발한다.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550명을 추가로 선발, 총 4천명 규모로 확대한다. 국학 발전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국학진흥원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학술대회, 교육연수 등이 많다 보니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가 크다. 지난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대면 사업을 비대면 방식으로 많이 전환했다. 스토리테마파크 공모전, 어린이 고전암송대회 등은 참가팀과 심사위원만 현장에 나오고 현장 실황을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한다. 학술대회, 포럼 등도 발표자와 토론자만 현장에 있고 현장 실황은 유튜브로 동시 송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국학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유교문화박물관도 특화된 곳인데.

"2006년에 개관한 유교문화박물관은 국내외에서 '유교'라는 타이틀을 처음 사용한 박물관이다. 2016년부터 무료 관람으로 전환해 1일 평균 관람객이 3만명 정도 된다. 유교문화박물관은 국학진흥원에 자료를 맡긴 기탁문중특별전을 열기 위해 설립됐다. 국학진흥원에 자료를 기탁한 문중은 1천200곳 정도 된다. 올해는 정자를 주제로 전시 중이다."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도 개관했다.

"세계기록유산 전시체험관은 일반인이 세계기록유산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유교책판과 현판을 과학적으로 보존하는 전문 수장고, 특수 유리창을 통해 유교책판과 현판 일부를 볼 수 있는 개방형 수장고, 디지털전시관 등이 있다. 어린이와 젊은 세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첨단디지털 체험관도 있다."

▶국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일 방안은.

"국학을 골동품처럼 낡은 것, 옛날의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기원전 2천~3천년 전의 이집트 문화나 기원전 시대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서 다양한 지식을 얻듯이 오랜 시간 한반도에서 산 우리 조상이 남겨 놓은 유산에서도 엄청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현재 우리 삶에 활용해야 한다. 이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게 국학진흥원이 할 일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 연구뿐만 아니라 DB구축, 연수, 활용사업,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 인공지능 탑재 등 다양한 방면으로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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