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미술관, 대구가 최적지 (2)]-한국 근대미술의 중심 대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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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19 16:52  |  수정 2021-05-21 13:32  |  발행일 2021-05-20
이상정-서동진-이인성으로 이어는 대구 서양화 계보...대한민국 근대미술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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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화단을 이끌었던 서동진의 '자화상(1924)'. 서동진은 1920~30년 대구 '영과회'와 '향토회'를 창립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중 대구화우회를 결성했다. 그는 영남일보 취체역(이사)과 국회의원(1954~58)을 지내기도 했다. 이 자화상은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한 작품이다.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가 '이건희 미술관'의 가장 적지로 꼽히는 첫 번째 이유는 삼성그룹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구는 한국 근대미술의 태동과 발전을 이끈 요람이라는 점에서 더 큰 명분을 갖고 있다. 

 

100년이 넘은 한국 근현대미술사 속에서 대구, 대구작가를 빼고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구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끌었고, 지금도 대구출신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삼성 유가족 측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한 이건희 컬렉션 1천488점 중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는 238명이며 작품은 1천369점이다. 그 가운데 1930년 이전에 출생한 이른바 '근대작가'의 작품 수는 약 860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약 58%를 차지한다. 

 

삼성가에서 앞으로 정부에 기증하기로 한 2만3천여점의 '이건희 컬렉션' 또한 근현대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이 건립될 경우 가장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1920~70년대 활동한 대구 근현대미술 작가들의 활동을 보면 자연스레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이 건립돼야 한다는 데 수긍이 간다.

◆대구미술이 한국미술이다
'대구미술은 한국미술이다(동아문화사)'는 미술사를 전공한 이중희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장(계명대 미대 명예교수)이 2019년에 출간한 책 제목이다. 이 소장은 책 서문에 "대구미술이 한국미술이란 말은 틀림없다. 조금의 과장도 거짓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옹색한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대구미술을 도외시하곤 감히 한국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 소장의 주장뿐만 아니라 미술사학계에선 대한민국 근대미술의 메카로 대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1920~30년대 문인화의 거장인 석재 서병오, 죽농 서동균, 긍석 김진만 등과 서양화 부문의 이상정, 서동진, 이여성, 최화수, 김용준, 박명조, 서진달, 이쾌대, 이인성, 김용조 등 당대 걸출한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과회', '향토회' 등 이념적 색채가 강한 미술 단체가 대구에서 생겨난 탓이기도 하다. 

 

이는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대구만의 특성이다. 더욱이 일제강점기 최고 권위를 가진 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대구출신 화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서울, 평양과 함께 근대미술을 꽃피운 도시다.


본격적인 대구의 근대미술 형성 및 발전기는 1925년 이후다. 특히 1931년 이후엔 조선미전에서 한 해에 대구출신 입선자가 10명이 넘게 나와 서울을 제외하고 대구가 평양을 능가하기도 했다.


김태곤 미술평론가는 "대구는 일본으로부터 직접 서양화를 배워 자생적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대구 서양화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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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성 '격구도(1938)'
영과회
1927년 영과회 창립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뒷줄 왼쪽이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내고 월북한 근원 김용준이다. 오른쪽 옆은 이상화 시인과 화가 서동진이며, 앞줄 맨 왼쪽이 천재화가 이인성이다. 대구미술 100년사
◆근대 대구화단과 개척자들
대구 최초의 서양화가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큰형이자 독립운동가 이상정이다. 이상정은 계성학교 미술교사를 하면서 21년 대구에서 처음 개인전을 가졌다. 23년엔 '벽동사'라는 대구 최초의 서양화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상정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화단의 개척자는 이여성이다. 그는 이쾌대의 형으로 한국화의 거장인 청전 이상범과 쌍벽을 이뤘다.


1922년 석재 서병오의 주도로 개설한 '교남시서화연구회'는 대구는 물론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서화 교육 및 전람회, 강연 등을 통해 상설도서 전시관 설립을 목적으로 뒀다. 교남시서화연구회가 주최한 '대구미술전람회(1923.11.12~17)'에서는 이여성, 이상정, 황윤수, 박명조 등 서양화가와 석재 서병오와 서상하, 서병주, 박기돈, 허섭 등 서화가들이 참여했다. 당시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는 "대구에 이만한 미술가가 있었는지 의심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대구에서의 서양화 계보는 이상정-서동진-이인성으로 이어진다. 서동진은 이상정과 고희동의 제자다. 그는 수채화가로 활동하면서 1927년 대구미술사(社)를 설립하고 이인성과 김용조 등 후학을 양성했다. 같은해 박명조, 최화수, 김용준, 이상춘, 이갑기, 이근무, 이상화, 이인성, 배명학, 주정환 등과 '어느 과(科)에도 속하지 않는다' '0에서 시작한다'는 뜻의 '영과회(0科會)'를 창립해 전람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단체는 2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김영동 미술평론가는 "영과회는 계몽적이면서 자주적인 이념을 드러낸 문화운동의 선구적인 사례로, 식민지 피압박 현실에서 민족의 자주적인 예술문화 의식을 고취·발전시키려 한 최초의 미술 단체"라고 했다.


영과회 해산 이후 1930년 대구 서양화가들을 중심으로 '향토회'가 창립됐다. 조선미전 입선경력이 있는 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김용준 등이 주도하고 이인성, 김용조, 서병기, 배명학, 김호룡, 서진달, 황술조, 손일봉, 금경연, 정경덕, 권진호 등이 소장파로 참여해 6회 전시까지 이어갔다. 향토회는 대구지역에 국한됐지만, 조선의 향토색론에 입각한 실천적 운동으로 1930년대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해방기념미술전람회
1945년 10월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해방기념미술전람회에 참석한 화가들. 앞줄 중간은 이승만이며, 왼쪽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한국 1호 서양화가 고희동이다. 둘째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용준이며, 네번째가 이여성의 동생 화가 이쾌대이다. 대구미술이 한국미술이다
◆6·25전쟁과 대구화단… 현대미술의 선도도시 대구
한국전쟁 때는 국민화가 이중섭을 비롯해 허백련, 오세창, 이상범, 이순석, 박성환, 전병덕, 문선호, 김형구, 최영림 등 피란을 온 중앙화단 작가와 월남한 작가들이 대구에 머무르며 예술혼을 꽃피웠다. 이중 허백련과 이상범, 함대정과 박성환 등이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 이중섭도 1955년 대구에서 전시를 했는데, 맥타가트 전 대구미문화원장이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해 이중섭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6·25전쟁 중 서동진, 주경, 손일봉 등은 서울 등지의 작가와 대구화우회를 창립했다. 전후 대구화단에선 구상과 추상, 비구상, 신구상 등 조형 이념에 따라 전문적인 단체들이 생겨났다. 추연근, 이복, 변종하, 서석규 등과 월남해 대구에 정착한 전선택, 신석필, 서창환 등이 주축이 됐다. 

 

55년에는 정점식, 장석수, 강우문, 이경희 등이 대구미술가협회를 창립했다. 1960~70년대는 주경을 시작으로 정점식과 장석수 등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이 발흥하는 시기다. 1960년을 전후로 앵포르멜 추상미술 운동이 일어나면서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게 된다. 당시 대구에는 국전 출품 작가들이 중심이 돼 '양화 팔공회'와 '63미전' '자유미협' 등을 결성했다. 

 

또 김진태, 김구림, 김인숙, 권영호, 이영륭, 박병용, 박휘락 등이 등장해 신선한 감각으로 조형 이념을 탐색했다. 

 

이 토대 위에서 전국 최초의 종합 현대미술제였던 1974년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가 태동했다. 대구현대미술제는서울(1975)·광주(1976)·부산(1976)·춘천(1977)·청주(1977)·전주전북현대미술제(1978)로 이어졌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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