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동해안 일천리 이야기 세상 <3> 성석제의 '진경, 자연의 마음'(겸재 정선과 내연산 삼용추폭포)

  • 입력 2021-05-26 17:30  |  수정 2021-05-3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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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그가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 향청이 있는 쪽에서 이방이 쫓아나왔다. 동작이 민첩하되 입이 무거워 그의 신뢰를 사고 있었다.
 

“내연산으로 가려 하네. 차비를 해주게.”
 

이방은 눈을 내리깔고 준비를 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세숫물을 가져오게 한 뒤 대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이 쉰여덟, 백발이 희끗거리는 장년의 사내가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병방이 말을 내왔다. 구종과 통인 예닐곱 명에 지필묵과 음식을 등에 실은 말 두 필이었다. 한두 번 행차를 한 것도 아닌데 어쩐 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에 올라 길을 나섰다.
 

그가 수령으로 부임한 청하현(淸河)은 일천여 가구, 오천 명 남짓한 사람이 산과 바다에 흩어져 사는 작은 고을이다. 청하라는 맑은 이름은 인근의 산악들이 거느린 계곡에서 모인 물 덕분에 나왔다. 들은 넓고 바다는 가까워 식물(食物)이 풍부하다. 부자들이 더 큰 부를 누리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흉년으로 백성이 허기져 죽지만 않는다면 살기에 이만한 데도 없다. 자연히 관아에 몰려들 송사도 많지 않았고 인근의 감사, 부사, 목사가 무엇을 바쳐라 오너라 가느라 괴롭히는 일도 적었다. 한 마디로 그는 특별한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임금은 그의 손을 거쳐 나올 조선 방방곡곡의 절경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직 그림에만 빠져 세상 물정조차 모르는 자에게 고을 수령 자리를 주는 게 가당키나 하냐며 벌떼처럼 일어나 공격하던 벼슬아치들로부터 임금은 귀를 막아버렸다. 이전부터 그를 떠받쳐주고 이끌어주던 사람들, 특히 스승과 지기, 선후배들은 또 어떤가. 그들 역시 뭔가 눈을 크게 뜨게 할 결실이 있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기까지 한 청하 읍성의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 말을 달리기 시작하자 관아에서 보경사까지의 삼십리 길이 서너 식경밖에 안 걸렸다. 군노와 통인들이 헐떡거리며 뛰어올 것이 가엾어서 몇 번 말고삐를 당기긴 했지만 황금빛 들판을 달리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가 온 기미를 알고 천년 고찰 보경사의 주지승이 마중을 나왔다. 그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산길로 접어든다.
 

짐승이 길을 내고 나무꾼들이 넓혀 놓은 산길은 평탄하다. 워낙 많이 갔던 터라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다. 울창한 수림이 좁은 산길을 감싸안고 있는 듯, 비장하고 있는 듯하고 작은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별스럽지 않게 흩어져 있는 계곡은 올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절승 속에서 평탄한 길을 골라가며 사는 것도 한 가지 인생이 아닐까.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의 인생 역시 비교적 평탄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주변에서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하면 무슨 그림이든 늘 선선하게 그려주었다. 도화원의 화원으로서 의무적으로 그려야 하는 그림도 있었지만 일에 앞서 그는 언제나 그림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야만 마음이 편했다. 명성도 얻었다. 큰 문제가 없이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림과 함께 살아오면서 언제나 충분치 않은 게 있었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가장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그이지만 아무리 그리고 그려도 손에 닿지 않는 무엇인가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더는 안 되는가.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조선 산천경개의 본질, 그 스스로의 내면이 하나로 합일되는 신천지가 열릴 것 같은데. 어쩌면 그 한 걸음은 영원히 이승에서 디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첫번째 고개에 다다른다. 보통 계곡은 하류가 넓지만 고갯마루 위에서 보면 오히려 내연산 상류가 활짝 더 벌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윽고 내연산 열두 폭포 가운데 첫번째 폭포인 상생폭포가 나온다. 위압적이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정다움이 있다. 나도 그랬지. 잘 알지. 그는 스스로의 인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길이 가팔라진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땀이 흐른다. 숲은 깊어지고 깊어진다. 이런 굴곡이 있어야 무엇이라도 된다. 굴곡이 없는 인생이 복받은 것이라고? 외로움이 싫으면 사람을 만나면 된다고? 그는 고개를 젓는다.
 

청하에서 그는 외로웠다. 외로움은 그의 예술혼을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이었다. 그는 그리고 또 그렸다. 마음 속의 그림을 화선지로 옮기고 또 옮겼다.
 

중국에서 건너온 화성(畵聖)들의 화첩을 보면서 그는 한 번도 통쾌하게 뜻이 통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건 중국의 것, 중국의 자연과 사람과 삶에서 우러난 것일 뿐 그가 얻으려는 그림의 궁극적인 뜻과는 달랐다. 시정에서 사람 사이에서 얻을 뜻이 있다면 금강산에서도 내연산에서도 얻을 그림이 있다. 피와 땀은 체화로 가는 과정일 뿐.
 

금강산을 예닐곱 번이나 갔지만 거기서는 내연산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다. 금강산이 장엄하다면 내연산은 인간적이다. 번드르르한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비밀스러운 진실을 간직한 강직한 선비 같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잠시도 쉬지 않고 발을 내딛는다. 가진 힘을 몽땅 써버림으로써 높이를 얻는다.
 

홀연 그의 시야가 툭 터진다.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난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일대(仙逸臺), 신선이 날아서 내려왔다는 비하대(飛下臺), 신선이 타고 온 학의 집이 있다는 학소대(鶴巢臺), 학소대 위의 소나무가 늠름한 골격과 기상으로 자연의 붓질, 준법(峻法)을 보여준다. 그는 못 박힌 듯 서서 천연의 산수화를 빨아들인다.
 

그대로 모사만 해도 천하절경, 그림으로서는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건 그가 그리려는 그림이 아니다. 수많은 풍경이 그의 마음 속, 인생에 낙관을 찍었다. 그는 사생을 하기 위해 조선의 산천을 떠돌면서 수없이 많은 발자국을 찍었다. 그가 그리려는 그림은 신선이 노니는 별유천지가 아니다. 서로가 발자국과 낙관을 찍어댄 끝에 하나가 된 물아일여의 그 경지다. 실경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복속되지 않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통인들이 헐떡거리며 따라왔다. 폭포는 요란하게 귀청을 두드리고 절벽은 하늘 위로 코끝을 들어 올리고 있다. 그는 풍경의 선정, 화의(畵意)의 삼매에 빠져 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요, 사또.”
 

조심스럽게 통인이 말을 건넨다. 그는 천천히 몸을 옮겨 자리에 앉는다. 화선지, 먹, 붓. 오십여 년을 마주해온 다정한 벗들. 그러나 오늘은 그, 정선 스스로가 달라졌다. 붓을 잡은 그는 먹을 듬뿍 찍어 첫 점을 찍는다. 붓 아래쪽 털이 휘며 먹물이 위로 올라간다. 그는 도끼로 내리찍듯 단숨에 내리긋는다. 상단의 털 속에 갇혀 있던 먹물을 뿜으며 붓은 자재하게 화선지를 유영한다.
 

숨쉴 새도 없이 그는 다시 붓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거침없다. 망설임이 없다. 멈추지 않는다. 덧칠조차 하지 않는다. 삽시간에 높이가 어린아이만한 크기의 그림이 그려진다.
 

고요가 찾아온다. 노을이 그림을 엿보듯 번지기 시작한다. 그는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는 귀속에 울려 퍼지는 뇌성을 듣는다.
 

하늘이 때를 베풀고 산천은 도량이 되어 주었다. 한 인간의 쉬지 않던 발걸음이 쌓여 도약의 위대한 한 걸음, 진경(眞景)으로의 진보를 만들어냈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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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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