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동해안 일천리 이야기 세상 <15·끝> 김주영의 '영덕 울티재의 산적과 샘물'

  • 입력 2021-05-29 17:55  |  수정 2021-05-3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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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일러스트=김성태 화백


영덕군 영해 버스 터미널에서 내륙 쪽으로 가다보면, 창수면 사무소와 나옹왕사 반송유적지를 만나게 된다. 그 앞으로 영양군과 만나는 918번 도로가 조용히 누워있다. 이 곳에서 영양군 경내로 진입하기 직전에 오른편으로 해발 684미터의 독경산 기슭에 있는 서읍령(西泣嶺)이 바라보이는데, 민간에서는 이 고개를 울티재라 부른다. 지금의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 옛날에는 영해 도호부에서 40리에 있는 독경산 지맥에서 가장 높은 고개다.


지금은 산골에 있는 작은 고갯길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한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영해도호부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지방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나 보부상들은 이 고갯길이 아니면 한양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었다. 더욱이나 대소관리들조차 이 고개를 영해관문인양 하고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시절 이 험준했던 고갯길에는 산적들이 고갯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나그네들과 보부상들 그리고 관원들의 행차를 불문하고 위협하여 약탈과 아녀자 겁간을 일삼았다. 심지어 신혼행차가 멋모르고 고개를 넘다가 새 신부가 산적에 끌려가는 봉변을 당기도 하였다. 그래서 보부상들은 이 고개 아래에서 며칠씩 지체하며 일행들의 수효가 이 삼 십 명으로 불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처럼 모두들 이 고개를 울고 넘는다하여 울티재라 부르게 되었다. 그칠 날이 없는 산적들의 폐해로 가근방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해지자, 견디다 못한 영해부에서는 포졸들을 풀어 산적들의 은신처인 소굴을 수색하여 소탕하려 하였다. 그러나 산적들이 은거하고 있는 소굴은 찾아 나설 때마다 오리무중이어서 전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심지어 자객과 첩자까지 풀어 은밀히 산적의 행적을 뒤좇았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 울티재에 지금은 위정 관광 농원이라든지 위정 약수터라는 이름으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위정사(葦井寺)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의 오른쪽 계곡에 한 암자가 있었다. 그 암자에는 <가라두치>라는 한 스님이 기거하며 정진하고 있었는데, 이 스님의 성정이 평소에도 매우 고약하고 거칠고 불순해서 위정사 주지 스님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이 스님이 처음 절간에 행자로 들어왔을 때는 몸도 연약하고 마음씨도 매우 착하여 측은하게 여긴 주지 스님이 슬하에 거두기로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쩐 셈인지 얼굴이 험상궂게 변하고 행동거지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수행자로서의 법도를 전혀 지키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대낮에 법당 한가운데 네 활개를 쭉 뻗고 코를 골며 낮잠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공양이나 염불은 아랑곳하지 않고 쏜살같이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새벽이 되면 암자로 돌아와 늘어지게 잠들곤 하였다.
 

가라두치의 수상한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던 주지 스님은 은밀히 그의 뒤를 밟기 시작하여 그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가라두치는 그가 기거하는 암자 바로 옆 후미진 곳에 토굴을 파고 십 여명의 산적들을 은신시켜 놓고 그들의 두목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절간 바로 코앞에 토굴을 파 놓았기 때문에 포졸들의 삼엄한 수색을 그때마다 손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절간 바로 앞에 산적의 소굴이 존재한다는 것은 포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일이었다. 산적들은 그 곳에서 십 여 년 동안 은거하면서 많은 행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물론 아녀자들을 잡아다가 첩으로 삼았다가 싫증나면 목숨을 빼앗고, 다시 아녀자들을 잡아들이는 횡포를 일 삼았다. 그런데도 가라두치는 자신의 신변을 위장하여 낮에는 절로 돌아와 승복을 입고 수행하는 척하다가 밤이 되면 산적 두목으로 돌변하여 울티재를 장악하였다.
 

주지 스님의 미행으로 가라두치의 정체는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었으나 그의 완력과 담력이 워낙 드세어 어느 누구도 감히 대적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뒤를 밟다보면 언젠가는 가라두치를 처치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는 것을 믿고, 계속 뒤밟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암자를 나선 가라두치가 암자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 발견되었다. 주지 스님은 재빨리 그의 뒤를 좇았다. 계곡으로 내려간 가라두치는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큰 바위를 밀치고 그 아래 고인 샘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을 한껏 마신 그는 누가 볼세라, 다시 바위로 샘물을 가리고 주위를 치워 위장한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 지켜보던 주지 스님이 그 자리에 도착하여 진땀을 흘려가며 가까스로 바위를 밀쳐냈다. 과연 그 바위 아래에는 맑은 샘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무언가 짐작이 들었던 주지스님은 그 샘물에 엎드려 한껏 물을 마셨다. 그렇게 하기를 달포 동안 쉬지 않고 계곡으로 찾아가 주야로 몰래 샘물을 마셨다.
 

한 달 뒤의 일이었다. 주지 스님이 어렴풋이 예상했던 대로 난데없이 기운이 솟고 몸이 불어나며 어떤 괴력을 가진 자와 마주친다 하더라도 물리칠 것 같은 담력과 완력이 생겨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삼아서 샘물을 덮고 있는 바위를 손으로 밀쳐 보았다. 바위는 일 같잖게 옆으로 밀려났다. 자신감을 얻게된 주지 스님은 암자에 있는 가라두치를 찾아갔다.
 

"네 이놈, 밖으로 썩 나서지 못하겠느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난데없이 호통을 치는 주지의 내심을 헤아릴 줄 몰랐던 가라두치는 속내를 숨기고 물었다.
 

"주지스님께선 어인 일로 소승에게 호통을 치십니까? 고정하시지요."
 

"네 이놈, 네가 암자 곁에 소굴을 파고 은신하고 있는 산적의 두목이란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것을 몰랐더냐?"
 

자신의 정체가 들통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가라두치는 다시 한 번 능청을 떨었다.
 

"스님 어인 일로 노망을 하신 것입니까. 소승과 힘 겨루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인지요?"
 

"내가 늙은 몸이라 할지라도 길손들을 약탈하고 아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욕보이는 도적 한 놈쯤은 숨통을 끊어 놓을 근력이 있다. 어서 밖으로 나와, 나와 겨뤄 보자."
 

"정말 입니까, 스님?"
 

"내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느냐."
 

"어디 한 번 해 봅시다."
 

그제야 가라두치가 벌떡 일어나 암자의 뜰로 나섰다. 두 사람이 맞붙어서 세 시간 이상 겨루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청수면 인량동 앞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천지가 진동할 것 같은 벼락이 마른하늘에서 번뜩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번개로부터 섬광이 떨어져 가라두치의 몸뚱이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말았다. 부처님의 힘으로 가라두치를 처단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창수면 독경산에서 흘러내리는 샘물은 지금껏 맑고 차서 마시고 나면 기운차기로 유명하다.  

김주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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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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