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구 김광석길(위쪽)과 텅 비어있는 김광석 길 야외공연장. 〈영남일보 DB〉 |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대프리카(대구)에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공포까지 겹쳐 시민들은 연일 한숨만 내쉬며 열대야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 김광석의 노래 '못다 한 이야기'라도 들어봤으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김광석길의 거리 공연(busking)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라진 지 1년6개월이 넘었다. 버스킹이란 오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부담없이 즐기는 거리 공연.
대구의 대표적인 버스킹을 이끌어 오던 김광석길은 골목 어귀 담벼락에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 부르는 김광석의 초상화만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썰렁한 모습만 보인다. 방천둑 너머 수성교 다리길에서 불어오는 신천의 강바람도 후텁지근하게 느껴진다.
수도권 코로나 확산세 대구경북 역풍
지역 대표 거리공연 장소마다 '썰렁'
모두 어울리며 보내는 박수 소리 끊겨
노래·기타소리·1인극 활기도 옛 추억
무명가수들 즉석공연 통해 역량 발휘
세계적 스타 발돋움하는 기회 되기도
지구촌 버스킹 하루빨리 시작되길…
올해로 15회째 열린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6월18일~7월5일)이 대미(大尾)를 장식하면서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일 듯했다. 정부가 K방역의 규제를 풀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휴가비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걸,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루 최대 1천7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자 아예 방역수칙을 3~4단계로 강화했다. 아쉽다 못해 안타까움만 남아 있다. 폭염 속에 숨막히는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국민들의 자유로운 일상을 막는 K방역밖에 없는가?
코로나19 사태로 한때 "대구·경북을 봉쇄해야 한다"던 정치권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시민과 의료진이 일심동체가 돼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코로나를 극복했다. 그것이 "됐나? 됐다!"라는 대구·경북 정서였다. 그런데 어쩌다 서울·수도권이 코로나 지옥으로 빠져들고 그 역풍이 대구·경북으로 불어오게 되었나.
그동안 대구 김광석 거리와 2·28기념중앙공원, 동성로 만남의 광장 등지에서 사라졌던 거리 공연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서울·수도권의 코로나 역풍 때문에 또다시 황폐해지고 있다.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를 상징하던 거리 공연은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까지만 해도 김광석길을 비롯한 시가지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중앙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렸던 '대구 생활문화제' 때엔 6070 어르신들까지 대거 참여해 2030 젊은이들과 어울려 거리 공연을 창출하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추억의 전설이 돼버렸다.
거리 공연은 흔히 길거리에서 1~2명의 단출한 즉석 공연으로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소규모 보컬 팀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거리 공연은 거리 정서를 한껏 북돋워주기도 했다. 노래뿐만 아니라 1인극 모노드라마는 연기자의 동작과 표정만으로도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다.
국내 모노드라마의 원조는 연극인 추송웅(1941~1985). 그는 데뷔 초기 서울 명동 옛 국립극장 앞길에서 창의성 높은 모노드라마로 거리 공연을 펼쳐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마침내 무대에 올린 '빨간 피터의 고백'은 시대상을 신랄하게 비판해 공전의 히트하며 모노드라마의 전설이 되었으나 아까운 나이(44세)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후 나타난 거리 공연의 주인공은 1962년생 가수 수와진(안상수·안상진) 형제. 이들은 1987년 첫 음반을 내며 기타를 메고 거리로 나왔다. 둘이 터를 잡은 곳은 역시 서울 명동 한복판. 어릴 때 심장병을 앓다 숨진 여동생을 잊지 못해 '심장병 어린이 돕기' 거리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무대 스케줄도 빡빡했지만 한 번에 수천만원씩 드는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해 틈만 나면 명동 거리로 나와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 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거리 공연 2년 만에 동생 안상진이 조직폭력배들에게 피습을 당해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극장식 유흥업소 출연을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그 당시 유흥업계에 기생하는 조폭들은 말 안 듣는 연예인들을 그런 식으로 보복했다. 안상진은 뇌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지만 결국 완치하지 못하고 연예계를 떠났다. 하지만 형 안상수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지금은 경북 문경새재 옛길박물관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수와진 형제의 도움으로 살아난 심장병 어린이는 모두 1천명에 이른다.
거리 공연은 원래 미국·영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 유행했다. 변변한 무대에 진출할 수 없었던 무명 가수들이 생계수단으로 거리에 나와 즉석 공연을 펼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 무대로 진출했다. 세계적인 음악 도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이 낳은 거리의 작곡가 안톤 카라스(Anton Karas)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빈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나 2차 세계대전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리의 악사로 나섰다. 번화가 노천카페 앞에서 기타도 바이올린도 아닌 자신이 고안한 현악기 치터를 두드리며 쫓기듯 빠른 템포로 흐르는 자작곡을 연주했다.
그 무렵 가짜 항생제 페니실린을 만들어 만병통치약으로 팔다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 영화 '제3의 사나이'를 제작하던 영국 영화감독 캐롤 리드의 눈에 띄어 이 곡을 배경 음악으로 전격 채택하게 된다. 영화가 개봉되자 관객의 가슴을 적시며 애잔하게 흐르는 배경 음악으로 공전의 히트를 하고 안톤 카라스는 일약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 |
미국의 남부 도시 뉴올리언스는 흑인 가수들의 재즈 공연으로 유명하다. 도시 전체가 공연장처럼 3~5인의 악단을 꾸려 시가지 곳곳에서 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세계 재즈계의 거장으로 신화를 남긴 흑인가수이자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Louia Aramstrong·1901~1971)도 버스킹에서 꿈을 키웠다. 그를 기리는 루이 암스트롱 파크에서는 요즘도 가수 지망생들의 재즈 경연이 펼쳐지고 있다.
뉴올리언스는 개척시대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곳으로 흑인 노예 역사에서 시작된 재즈의 발상지다. 발코니가 달린 유럽식 건물이 아직도 고풍스럽게 거리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마치 바다처럼 넓게 흐르는 미국 최대의 미시시피 강변 노천 카페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관람하는 재즈 공연은 구슬픈 흑인 영가(靈歌)와 함께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관광지마다 거리 공연이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탱고나 더블린의 거리 연주, 에든버러의 퍼포먼스, 마드리드의 탭 댄스 등이 유명한 거리 공연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이 있듯 천재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게 마련이다. 불세출의 천재 작곡가 겸 가수 김광석을 배출한 대구에서도 제2의 김광석이 나타나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대해본다.
계명대 외래교수·미술학 박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